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키 Oct 08. 2024

복자씨의 별사탕

탱자나무집에 이사 온 아이_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2

햇살이 밝고 바람도 잔잔한 날, 엄마와 아버지는 남의 집  밭일하러 가시고 할아버지는 잠잠하다가도 가끔씩 숨이 끊어질 듯 기침을 하시며 방에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세숫대야보다 배는 큰 소쿠리를 옆에 끼고 미나리꽝 옆으로 이어진 개울을 따라 펼쳐진 풀밭 너머에 있는 채마밭에 면서 은수에게 절대 어디 가지 말고 할아버지가 부르면 얼른 대답하고 곧장 할머니에게 달려와 알려야 한다고 거듭거듭 당부를 하셨다. 


엄마와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고, 누나들도 학교에 가고 나면 은수는 할아버지 방을 들락거리거나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하루를 보내곤 했지만 할아버지가 앓아누우시면서부터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는 건 어둡고 습해 깊고 깊은 동굴 속을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은수는 손바닥만 한 툇마루에 철퍼덕 주저앉아 할머니가 젓가락 하나 꽂아 대접에 담아 주고 간 밥풀 묻은 감자 한 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기침은 잦아드는 듯싶다가도 터지듯 나왔고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잦아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기침소리를 따라 마음이 초조해 지거 거나 안심이 되는 건 은수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감자 냄새를 맡았는지 은수 주위를 뱅뱅 돌며 총총거리는 참새 떼에게 젓가락을 눌러 부순 감자 조각을 손가락으로 집어던져주고 참새 떼 하는 양을 바라보던 은수는 삽짝 바깥으로 자동차가 달려와 서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 앞까지 차가 들어오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동네에는 40여 호의 집들이 있었지만 은수네 집은 다른  세 집과 함께 동네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트럭은 맞은편 집 앞에 서 있었고 트럭 운전사 아저씨와 한 아주머니가 짐을 부리고 있었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세간살이 몇 개와 이불을 싼 보자기, 옷가지가 싸인 보자기와 거칠게 잘라 만든 나무 상자 몇 개가 전부였고 짐들은 순식간에 부려졌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진 이 집, 그러니까 은수네 앞집은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꼬부랑 할머니가 혼자 사시다가 거동이 어려워지면서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모셔갔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군가가 이 집에 들어와 이웃이 되기를 바랐고, 볼품없는 집이나마 할머니가 부지런해 그  모양을 유지했었는데 할머니가 떠나면서 온기를 잃은 집이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어른 키보다 큰 탱자나무 가지가 빽빽한 사이로 어린애 손가락만 한 가시가 파랗게 독을 품은 양 뾰족함을 드러낸 사이사이 어울리지 않게 탱자나무 하얀 꽃잎이 조그만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분주한 어른 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작고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아이는 하얀 꽃봉오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시가 박힌 나무줄기 사이에 조심조심 손을 넣고 있었다.


은수는 그런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에게서 느끼는 초조함과는 또 다른 초조함에 입술을 물었다. 경애누나는 가시나무 근처에 가만 안 된다고 했다. 탱자나무 파란 가시가 가을이면 빨갛게 변하는 건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누나가 은수를 겁주기 위해 하는 소리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은수는 조바심이 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발만 동동 굴렸다. 여자아이는 순간 움찔했고 은수는 여자아이가 가시에 찔렸음을 직감했다. 여자아이가 탱자나무에서 두세 걸음 뒷걸음질 치더니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고 순간 휙하니 뒤로 돌아섰다. 


은수의 눈이 여자아이의 그것과 마주친 건 그때였다. 여자아이는 은수를 보고도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가시에 찔리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을 뿐 소리를 내거나 울지도 않았다. 


짐을 다 부렸는지 트럭이 떠나는 소리가 들리고 아주머니가 그제야 은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넌 어디 사니?” 아주머니의 물음에 은수는 왠지 여자아이를 보고 있었다는 걸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었다.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궁금한 대로 물었고 은수가 앞집에 사는 것도, 은석이 또래라는 것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우리 은석이는 여섯 살인데.. 우리 은석이보다 은수가 한 살이 많네. 은석아, 오빠라고 부르면 되겠다. 은수야, 우리 은석이 동생이니까 잘 좀 부탁한다.”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은수는 그렇게 은석이의 오빠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상심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