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헐떡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제법 가을이 느껴진다. 날이 좋아서 손빨래를 했다. 수건이며 옷가지 등을 모았다 세탁기를 돌리는 대신 손으로 비벼 널었다. 햇살이 좋아서 괜히 몇 개 되지 않는 화분도 정리했다. 누렇게 시든 잎을 떼어내고, 파란 잎사귀 위의 먼지를 털어 햇빛이 잘 드는 베란다 창가로 화분을 옮겨 주었다. 화분이 있었던 자리에 동그라미들이 선명하다. 동그라미 주변으로 쌓인 먼지를 닦아내다가 문득 나도 해바라기가 하고 싶어 진다.
베란다 창틀을 따라 일자로 쪼르르 앉힌 화분들 옆에 가만히 앉는다. 국화꽃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엊그제 아이들 아빠가 얻어온 화분이다. 국화꽃 화분 세 개도 옮겨주었다. 화분을 옮길 때 얼굴을 스친 국화꽃 짙은 쑥내음 같은 향기가 얼굴에 묻었다. 노란국화꽃이 핀 화분 양편으로 하얀 국화꽃 화분과 자주색 국화꽃 화분을 놓고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는다.
화분에 물 주기를 잊었다. 주방으로 달려가 개중 가장 큰 머그컵에 물을 가득 담아와 화분 하나에 물을 부어주니 순식간에 흡수된다. 한 번 또 한 번.. 가끔은 거실을 통과하면서 바닥에 찔끔찔끔 물을 흘리기도 한다. 화분 하나당 물 한 컵은 가당치가 않다. 화분이 열개쯤 되니 한 삼십 번은 왔다 갔다 해야겠네.. 나는 굳이 큰 바가지나 대야에 물을 떠서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줄이고 싶지가 않다. 나는 대부분 이름도 잊어버린 식물들에게 맑은 물을 주고 싶다. 맑고 깨끗한 물을 마시면 나도 식물들처럼 손끝 생채기에 빨강이 아닌 파랑 방울이 맺힐까.
언젠가 친구와 베란다 식물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그 친구는 식물의 속성에 맞게 음지와 양지를 가려 식물을 놓아주고, 식물의 습성에 맞게 어떤 애는 매일, 어떤 애는 매주, 또 어떤 애는 달에 한 번씩 물을 준다고 했다. "어? 나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쯤.. 대체로 토요일에 물을 주는데.. 아주 가끔은 잊어버려서 일요일이나 월요일 혹은 한주를 건너뛰기도 하지만.."
친구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했다. 친구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말이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하고 있음에도 우리 베란다에 있는 녀석들은 죽지 않고 나름 잘 살아내고 있으니까. 나는 식물들도 환경에 적응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누구네 집 식물들은 주인 잘 만나 주인이 다 맞춰주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주인 잘 못 만나 주인 꼴리는대로 투박하고 둔감한 습성에 맞춰 살아야하니 고달프기도 하겠다.."
나는 다시금 화분들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는다. 햇살을 등진 등에 내려앉은 햇살이 따사롭다. 베란다에 생긴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림자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뾰족한 것도 있고, 나뭇잎 모양 그대로 인 것도 있다. 국화꽃 화분은 꽃이 얼마나 빽빽한지 그림자가 동그랗게 뭉뚱그려져 있다. 국화꽃 화분 옆에 그와 비슷한 그림자 하나가 더 있다. 키가 큰 브로콜리가 화분에 심긴 것 같다.
문득 솔로몬의 지혜였던가.. 뭐 그런 데서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굴뚝 청소를 마친 두 아이 중 어느 아이가 얼굴을 씻을지에 대해 묻는 이야기였다. 두 아이는 똑같이 굴뚝을 나왔지만 한 아이는 얼굴이 깨끗했고, 다른 아이는 얼굴 가득 검댕이가 묻었다.
나는 문득 식물들 사이에서 브로콜리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나도 식물이지 싶다. 이렇게 햇살아래 식물들과 똑같이 해바라기를 하고 똑같이 그림자를 만드는 지금 같은 순간은 화분이 나처럼, 내가 화분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