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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Sep 09. 2024

어느 이른 아침에

왜..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꿈을 꾼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눈을 뜨자마자 뭔가가 뇌리를 스치는..


오늘 아침 제가 그랬어요.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노라 노래했던 어느 청순한 시인의 모습이 느닷없이 떠올랐지 뭐예요. 떠올랐다는 표현은 의미는 전달되지만 적합한 표현은 아니에요. 생각났다는 말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성에 차는 표현을 찾을 때까지는 그냥 스쳤다고 해야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왜 갑자기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내 머리를 스쳤을까. 꿈을 꾼 건 아닐까. 꿈을 꾸었지만 다 잊어버리고 시인의 가느다란 미소만 잔상으로 남은 건 아닐까.


어제 가끔 안부를 묻는 친구랑 통화를 했어요. 중학교 친구요. 저의 중학교 친구는 모두 한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귀결되곤 해요. 신기하게도 중학교 친구만 그래요.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아요. 1학년때인 것도 같고 3학년 때였던 것도 같네요. 뭐 무슨 상관이겠어요. 어차피 중학교적 친구에 대한 기억은 그 친구로 요약되어 버릴 텐데요.. 그 친구는 저의 짝꿍이었어요. 미소년같은 느낌이 있었고 매우 착했어요. 제가 착한 사람을 좋아하냐고요? 아니요. 아니, 맞아요. 아니.. 맞긴 하는데 꼭 착한 사람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이기적이든 완고하든 폐쇄적이든 개방적이든 상관하지 않아요. 뭔가 고유함이 느껴지면 그뿐이에요.


이야기가 산으로 갔네요. 제가 좀 그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봐요. 그렇다고 제가 중늙은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런데도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건 자꾸 저 자신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고요해지고 싶어 져서 그래요.


아무튼 저의 짝꿍은 소월의 시를 참 좋아했어요. 친구가 소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줏대 없는 저는 친구를 따라 소월로 갈아타야 하나 싶었을 정도였다니까요. 저는 동주님이 좋았어요.


동주님은 제게 그런 이미지예요. 검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아니라 파란 밤하늘에 아스라이 빛나는..


한 번은 그 친구가 사진을 한 장 보여줬어요. 태양이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지요. 사진에 제목을 붙여보라더군요. 태양은 살아있다. 이건 친구가 붙인 제목이고요. 저는 태양의 왕국..ㅋㅋ 농입니다. 제가 뭐라 붙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친구에 대한 기억이 생각보다 많지 않네요.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요.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은 아닌 거 같아요.


어제 어떤 모임도 있었어요. 거기에 오신 분 중에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는 분이 계셨어요. 사랑한대요. 그러면서 웃는데 내가 들어본 그분 웃음소리 중 가장 크고 밝은 소리였어요. 또 어떤 분은 그러대요. 모든 책은 자기 계발서라고. 어린 왕자가 최고의 자기 계발서라고요. 묘하게 설득되더라고요. 그때 윤동주 님이 언뜻 떠오르데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러고 보니 최고의 완성형 인간을 지양, 아니 지향하는 말이었네요. 저는 그러나.. 사무쳤나 봐요. 너무 투명해서 너무 고독해서 너무 엄격해서 너무 인간적이어서..


이제야 알겠어요. 눈을 뜨면서 어째서 '그'가 스쳤는지..


시공을 달리함에도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조우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어요. 간혹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혼이나 영원은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예기치 못하게 저에게 잔잔하지만 벅찬 행복을 주신 모임친구분들과 모처럼 전화해 준 친구가 새삼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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