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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08. 2020

못된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시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두어 달 만이었다.






긴 연휴 동안 어버이날도 있고 혼자 심심한 남편이 시댁에 2박 3일을 다녀온 차였다. 온 가족이 함께가 아니라면 시댁에 가지 않던 남편이 혼자 시댁에 가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도 한참 후였다.


시댁에서 출발하기 전 뭐 필요한 거 없냐는 남편의 전화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는데 돌아온 남편 차 트렁크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막걸리빵 두 종류(나 이거 좋아했었나??? 먹어본 적이 없는데.. ^^;;), 매번 갈때마다 꼭 사오는 닭강정, 낙지젓, 명태회무침, 말린 문어(올 초 잠시 집에 머물던 조카 덕분에 먹었던 건데 은근 손이 갔었다)그리고 시어머님이 챙겨주신 참기름 두 병과 두릅 삶아 얼린 것 두 봉지, 내일 도착할 소팔 곱창과 함께 먹으려고 사온 두릅, 그리고 반건조 가자미. 아무것도 사 오지 말랬는데 참 많이도 사 왔다. 그중 일부는 함께 시장에 가신 시어머니가 계산하셨다고 했다. 보나 마나 지 식구들만 챙긴다 서운한 내색하셨을 텐데 남편은 눈치가 꽝이다. 내게 선물을 하면 시어머니께 자랑을 한다. 그러다 한소리 들었음에도 늘 까먹는 것 같다.



참기름과 삶은 두릅을 보내신 게 아니더라도 어버이날이니 전화를 드리긴 해야 했다.

집에 잘 도착했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남편에게 잠깐 바꿔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하는 전화는 불편하고 더 하기 싫다. 그래서 나중에 해야지 하다간 못할 것 같아 맘먹음 김에 통화를 해야겠다 싶었다.


“잠깐 엄마, 바꿔달래.”

전화를 건네받았다. 요즘 나는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려면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언젠간 이것도 익숙해지겠지.

“예. 어머니. 뭘 이렇게 잔뜩 사 보내셨어요?”

“넌 꼭 남의 전화 뺏어서 전화할래? 뭐가 그렇게 바쁘냐?”

두 달이 넘게 안부 전화를 안 했다는 잔소리다. 당신 아들이 꼬박꼬박 하는데 그딴 며느리한테도 대접은 받고 싶으신가 보다. 대꾸해봤자 의미가 없으니 내 할 말만 하면 된다.

“장도 알차게 잘 봐왔네요. 살림에 소질 있나 봐요. 이럴 줄 알았음 진즉 살림하라고 할걸 그랬어요.”

간단히 인사만 하고 끝었어야 하는데 내 실수다.

“요즘 여자들은 염치도 좋아. 남자보고 돈도 벌어오고 살림도 하라고?”

휴.. 늘 이런 식이다. 모른 척 다시 이야기했다.

“이렇게 장보는 거 잘하는 줄 알았음 제가 돈 벌고 살림하라고 할 걸 그랬다구요.”

“지랄한다. 진즉 돈 벌지 이제 와서 그런 소리하냐.”

싫다. 아픈 남편 병간호에 애들 키우고 나와는 맞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사랑받으려 맘고생을 그렇게 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해 돈도 벌었어야 하는구나.

“잘 먹을 게요. 내일 여행 가신다면서요?”

전화한 김에 어버이날 인사도 했다. 이게 목적이었으까. 하기 싫은 건 한 번에 끝내자.

“응, 그래. 누가 보내준 데서 당일로 다녀오기로 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여행 많이 안 가던데.”

“미리 정해진 거고 우리끼린데 괜찮아.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면 돼지. 아들도 마스크 하나 주고 갔다. 이런 말 하면 너네가 서운할지 모르지만 다른 집들은 며느리들이 인터넷에서 마스크 주문해 50개씩 보내준다는데 난 챙기는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서 얻어 쓴다.”

진짜 싫다. 난 마스크를 사 본 적이 없다. 경제권도 없다. 마스크 대란 초기 어머님께 마스크 보내드려야 하지 않냐고 남편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구할 수 있으면 한 박스 어머님께 보내드리라고. 그런데 남편이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왤게 시에밀 싫어하냐? 시에미한테 전화도 안 하고.”

“어머님이 하시면 되죠. 제가 안 받나요? 필요하신 거 있음 전화하세요.”

“너네 바쁠까 봐 그러지. 시에미 전화 누가 좋아하냐?”

지친다. 무슨 말씀이 듣고 싶으신 걸까? ‘아니에요. 저 어머니 좋아해요.’ 라는 말이 듣고 싶으신 걸까. 나에게 그런 말을 내뱉고도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실 수 있는지.. 10분도 안 되는 시어머니와의 통화에 진이 빠졌다.

“낼 조심해서 다녀오시고 보내주신 거 잘 먹을게요.”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기분이 가라앉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료실에 물건 입고날이라 안 쓰던 근육을 썼더니 몸도 무거운데 마음도 무겁다.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효자 아들 노릇하는 남편도 꼴보기 싫었다.






한동안 시어머니를 이해해 보려 애썼던 적이 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상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일이란 걸 알기에.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될 테니까. 나도 완벽한 며느리는 아니었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어머니 맘을 불편하게 해 드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시어머니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나를 보던 딸이 말했다.


“엄마 왜 그래? 이해하지 마. 왜 이해하려고 해? 그건 그냥 할머니가 이상한 거야. 잘못한 건 할머닌데 왜 엄마가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힘들어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 할머니가 잘못한 거야.”


딸의 말에 눈물이 났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삶이 그렇게 옳고 그름으로만 나뉘지는 않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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