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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27. 2020

그냥 아무나가 되기도 어려운 세상


금요일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 84가 졸음 껌 6알을 씹고

그 지독한 맛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보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졸음 껌을 씹어 본 적이 없어 그 맛을 알지 못하지만 기안 84의 표현에 의하면 물파스 맛이라고 했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는 물파스 맛과 그와 비슷하다는 졸음 껌 맛. (가끔 인간의 상상력은 놀랍다. 먹어보지 않았지만 그 맛을 알 수 있다니.. )


내 웃음소리에 화장실 가던 딸이 물었다.

“왜?”

“기안 84가 졸음 껌 6개를 한꺼번에 씹고 난리 났어. 너무 웃겨.”

“으웩. 그거 하나만 씹어도 매운데..”

“그렇다네.”

‘응?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계속되는 기안 84의 코미디를 보느라 금방 잊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직보(학원에서 하는 시험 직전 보강)를 간 딸의 책상을 정리해 주다 그 껌을 봤다. 졸음 번쩍 껌.



딸은 나를 닮아 잠이 많다. 아들도 많다. 두 녀석 모두 서울대 합격생의 합격수기에나 나올 법만 수면 시간을 가지고 있다. 8시간. 중학생 때는 두 녀석 모두 학원을 안 다녀 하교하면 늘어지게 낮잠을 잤었다. 말이 낮잠이지 2시간은 거뜬히 잔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수면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아들은 고등학생 때도 꿋꿋이 낮잠을 잤지만 학원을 선택한 딸은 낮잠을 잘 시간도, 그렇다고 밤에 일찍 잘 시간도 나오지 않는다. 8시간이 자신의 적정 수면시간이라고 하는 딸은 시험 한 달 전이 되면 잠을 줄이려고 애를 쓴다. 새벽 1시 취침, 아침 6시 45분 기상. 그나마 남편이 셔틀(?) 서비스를 해줘서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나도 수면 시간이 준다.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를 두고 먼저 자기 미안해 큰 애 때부터 아이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도 나도 늘 졸리다.



코로나 전에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의 기간이 두 달 정도 있어 컨디션을 회복하고 다시 시험 준비를 했는데 개학 연기와 격주 등교를 하는 올해는 중간고사 이후 한 달 만에 기말고사를 봐야 하다 보니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지난 중간고사 직후 한바탕 난리가 난 직후라 남편과 나는 공부보다 행여 아이의 병이 도질까 걱정이 되었다. 큰 애 때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딸에게는 늘 한다. “그만하고 자.” “좀만 더 자.”








며칠 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학교에서 학원으로 바로 갔다 저녁 늦게 돌아온 딸이 침대에 누워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졸려서 2시간을 서서 수업을 들었다며. 처음부터 졸린 건 아닌데 자기가 졸려 교실 뒤편 서서 듣는 책상으로 나가려고 하면 이미 다른 아이들이 차지해 자리가 없는 터라 이날은 수업 시작부터 책상을 차지하고 서서 수업을 들었다는 딸의 말에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오늘 책상의 졸음 껌을 보고 또 한 번 마음이 짠했다. 매일 잠을 쫓기 위해 서서 수업을 듣고 커피를 2잔씩 마시며 졸음 껌을 씹는 삶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예체능은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목표를 가지고 한다. 그런데 왜 공부는 재능과 상관없이 목표가 없어도 해야 하는 걸까. 대학이 목표가 아닌 과정이 될 수는 없는 걸까. 훌륭한 사람이 아닌 아무나가 되기도 어려운 세상이라니.


그렇게 구내염이 생긴 아이는 오늘도 12시간 공부의 늪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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