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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Aug 17. 2020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안전선은 생명선(?)



아들만 둘인 시댁에서 둘째인 남편의 역할은 딸에 가까웠다. 무뚝뚝하고 존재만으로 집안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시아주버님이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상속권을 가진 장남의 역할을 하신다면 남편은 시키는 일만 하고 집안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했다. 그러던 것이 그 사건이 터진 그 전해 잠깐 애매하게 바뀌었다.



늘 시어머니와 티격태격하시던 시아주버님이 갑자기 시어머니를 챙기며 사건은 시작되었다. 물론 자식이 부모를 챙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아주버님은 본인이 하시는 것이 아닌 주변인에게 챙길 것을 명령하는 것이었기에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엄마, 오늘 무슨 행사 한다는데 누구랑 다녀오세요.” “답답하실 텐데 누가 모시고 드라이브 좀 다녀와라.”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명(?)당한 사람이 그걸 거부하면 우리는 시어머님께 불효자가 됐고 시아주버님은 효자가 됐다. 참 이상한 논리지만 그랬다.



그 날 일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8시가 다 되어 시아주버님께 연락이 왔다.

“우리 좀 전에 출발했다. 엄마 니네 집에 모셔다 드리고 우린 병원 가려고.”

(시어머니가 오시겠다 한 이유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 신변 보호(?) 차원이 우선이고 그것마저 쓴다면 아마 댓글창이 난리가 날 것 같아서요.)

자신의 엄마와 형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시댁일에 대해 NO라는 말을 허락하지 않는 남편인지라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그런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당황스럽고 싫은 속내를 숨길 수가 없었다.








본디 정리 정돈에는 소질이 없던 나는 시어머니가 오신다 하면 말 그대로 집안 청소를 하느라 며칠 전부터 진을 빼야 했다. 청소라기 보단 거의 내다 버렸다. 시어머니는 가족인데, 부모니까 가르치는 거지 라며 냉장고부터 옷장까지 다 뒤지고 잔소리를 하셨다. 와 계시는 내내 삼시세끼 밥하느라 시어머니 말동무해드리느라 지적당한 집 청소하느라 나는 말 그대로 방바닥에 엉덩이 붙일 틈이 없었다. 하긴 잠시 다녀 가시는 거면 숨길 수나 있지만 일주일 가까이 머무르시면 숨길 곳도 없다. 시어머니가 내 살림을 지적하실 정도로 엄청 깔끔하시느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서는 청소를 하지 않는 나도 남의 집에 가면 먼지만 보이는데 며느리 집에 온 시어머니는 오죽했겠는가.



상황이 이런데 마침 나는 그 해 지금의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이라 집 안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그런데 3시간 뒤면 시어머니가 오시는 상황이라니,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애들만 있는 빈집에서 시어머니가 이곳저곳 뒤지실 생각을 하니 짜증을 넘어 암담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기에 그저 혼자 속으로 삭이며 ‘될 대로 돼라.’하고 있었다. ‘욕먹지 뭐.’ 그런데 그 날은 자신의 엄마에게 불만이 쌓이던 남편이 나섰다. 시아주버님과 남편의 역할이 바뀌면서 시어머니는 남편을 소위 갈구었고 그런 형과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짜증이 나 있었다.

왜 그런 일에 엄마가 오시느냐. 이렇게 말도 없이 갑자기 출발하며 오시면 어떡하냐. 집사람 일 나간다.

하지만 시아주버님은 완강(?)했다. 일 나가는 게 뭐가 문제냐. 남의 집 가냐. 가족끼리 미리 연락을 하게.  




그렇게 서로 감정이 상한 채 시어머니는 오셨고 다음 날 나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대충 밥상을 차려놓고 출근했다. 예전이라면 힘들게 아침상을 차려 시어머니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던지 자는 아이들을 깨워 시어머니와 상에 앉히고 출근을 했을 텐데 그 날은 남편의 지원을 업고 내 나름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시위를 한 것이었다. 처음 받아보는 푸대접에 기분이 상한 시어머니는 내가 퇴근하기 전 시아주버님과 집으로 돌아가셨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잘했어야 하는 건 아녔는지 내내 찜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개인마다 자신만의 영역이 있고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 선을 넘는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몹시 피곤하다. 넘어오지 말라고 눈치를 줘도 무시하는 건지 모르는 건지 선을 넘는 건 당연하고 선을 넘었다 이야기라도 할라 치면 화를 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인데 어때..” 혹은 “우리 사이에..”라는 말로 자신이 선을 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하물며 그것이 가족이라고 해도 넘어오지 말라고 친 선을 넘으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가족이니까..” 혹은 “친하니까..”라는 말로 지켜야 할 선을 넘는 것을 합리화하지 말자. 관계가 친밀할수록 지켜야 할 선은 더 정확히 지켜야 한다. 선을 지킨다는 것은 정이 없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안전선은 사람 관계에서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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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뒤 설을 앞두고 이 일이 도화선이 돼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괴롭힐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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