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꾸미 Nov 16. 2020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2020년 11월 12일


월요일 아침, 논산 훈련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내비게이션으로 체크했었다. 집에서 3시간 반. 멀다. 아침 출근시간 막힘을 감안하고 훈련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늦는 것보단 남아서 기다리는 게 훨씬 나으니까.(근데 지각함. ㅠㅠ)


입소 당일 아침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8시 반에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잠든 아들. 내일부터는 새벽 6시 기상일 텐데 아침잠 많은 녀석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드니 엄마맘은 잠시 짠했다. 길이 막힐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막혀도 너무 막히는 도로. 시댁을 갈 때는 새벽에 출발하는 덕을 보기도 하지만 서울만 빠져나가면 거의 막힘없이 갈 수 있는데 논산은 서울을 빠져나왔음에도 중간중간 막히는 곳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큰 화물차들은 왜 이리 많은지.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도착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나는 초조한데 애초에 논산 훈련소 근처 맛집을 찍고 출발한 남편과 한참을 자다 일어나 친구들에게 전화하느라 바쁜 아들은 늦어지는 도착 시간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인 아들이 점심을 먹고 화장실도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두 시간 전에 도착하면 좋으련만 야속한 도로 정체는 풀릴 기미가 없었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전부 입대하러 훈련소 가는 사람들일까. 평일에 고속도로가 이렇게 막히는 줄 처음 알았다.


맛집에서 먹을 것만 생각하고 휴게소도 전부 패스. 화장실이 급해 정안 알밤 휴게소에만 잠시 들렀다. 농담처럼 '여기면 니 동기들 있겠다.' 했는데 곳곳에 머리를 빡빡 민, 딱 봐도 "저 군대 갑니다."라는 남자 녀석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는 척할 수도 모른 척하기에도 뭣한 사이. ^^






12시 40분, 집에서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드디어 논산에 도착했다. 훈련소가 아닌 맛집에..^^;;  남편이 알아본 맛집은 갈비찜과 불고기가 메인이라는 OO면옥. 오늘의 주인공 아들에게 메뉴 선택권을 줬지만 늘 그렇듯 아들은 “난 아무거나 괜찮아.”라며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침도 먹지 않아 배가 고플 만도 한데 현실로 다가온 입영과 혹시나 긴장해 배가 아플까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입맛이 없는 듯했다. 결국 내가 갈비찜을 주문했다. 고깃집에 가도 된장찌개와 공깃밥이 필수인 아들을 위해 공깃밥도 추가하고 남편은 비빔냉면을 추가했다. 지금 먹지 않으면 저녁 6시까지 쫄쫄 굶어야 하니 입맛이 있건 없건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식당으로 왔지만 아무도 배가 고픈 줄 모르고 있었다. 갈비찜을 보기 전까진.


전날까지만 해도 편지지 사다 달라, 샴푸 사다 달라, 우표 사다 달라 등 이것저것 시키는 아들놈 때문에 짜증이 나 얼른 가버렸으면 싶었었는데 막상 논산까지 오고 나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이 훈련소 앞에서 주책맞게 울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훈련소에게 15분가량 떨어져 있는 음식점에는 일반인 손님보다 입영장정 가족 손님이 더 많았다. 훈련소까지 15분이면 간다는 남편 말을 믿고 느긋하게 밥을 먹고 음식점 앞 테이블에서 아들은 한가로이 당분간 느끼지 못할 자유를 느꼈다. 다른 곳이라면 일찍 가기도 하겠지만 입영만큼은 일찍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다른 가족들 마음도 마찬가지인지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야외에서 삼삼오오 시간을 보냈다. 하나둘 입영장정들이 떠나고 1시 40분 우리도 훈련소로 출발했다. 5분이면 이별하기 딱 좋은 시간 같았다. 보내고 들어가기 아쉬워 머뭇거리지 않아도 될 시간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훈련소 앞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훈련소 앞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면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우리는 멀리서 먹었기 때문에 훈련소에서 마련한 먼 주차장으로 가야만 했다. 설상가상 안내를 잘못 받아 입구가 아닌 출구로 진입. 유턴해서 나와 주차장에 차를 대니 2시.


"아들 너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다른 것도 아니고 입영시간에 지각이라니..

나는 행여 교관들에게 밉보일까 초조한데 남편과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괜찮아. 좀 늦어도 돼."

사실 우리처럼 늦은 사람도 꽤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늦는다고 나도 늦어도 되는 건 아니지.

조금 전까지 4주간의 헤어짐에 싱숭생숭했던 엄마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마음이 바빠졌다.

"2시 5분이다. 빨리 걸어."

"10분이나 돼야 도착하겠네."

재촉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괜찮아. 좀 늦어도 다 받아줘. 아직 다들 가고 있잖아."

그렇게 헐레벌떡 훈련소 앞에 도착하니 들어가는 사람보다 보내고 돌아 나오는 가족들이 더 많았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훈련소 안에서 입소식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현재 입소식과 퇴소식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드라이브 스루 형식으로 훈련소 앞에 아이만 내려놓고 가는 분들도 계셨다.


정신없이 훈련소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돌아서는 그때서야 드는 생각.

'아. 사진.'

아들과 함께 훈련소 앞에서 사진 찍었어야 하는데 깜빡했다. 뒤 돌아보며 손 흔드는 아들 녀석 모습, 사진으로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손만 흔들어 줬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4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들 핸드폰.



집에 돌아와 텅 빈 아들방을 보면 슬플 줄 알았는데 다정한 울 아들, 엄마가 슬퍼할까 봐 그랬을까. 침대와 의자에 던져놓은 옷가지와 책상 위 널브러진 아들의 물건들이 잠깐 나갔다 올 것처럼 반기고 있었다. 자취를 해서 집에 함께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아서인지 그런 방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문득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이 생각났다. 나는 돌아올 것을 알기에 어지럽혀진 이 방에 안심을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가야하는 그 분들 마음은 감히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이가 크는 만큼 엄마도 커야 하는데 엄마의 성장 속도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따라 가지 못하는 것 같다.









8시간 운전에 피곤해 보이던 남편은 보내고 나니 서운한지 아직 아무 소식도 없는 '더 캠프'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뒤늦게 입영장정 안내문을 발견해 내게 읽어주었다.


"여기 입영장정 안내문이 있네. 금지품목이랑 반입 가능품목도 다 나와 있는데?"

"그래? OO이 가져간 것들은 다 괜찮은 건가?"

"아니, 위장크림, 샴푸, 린스, 바디워시 같은 거 안된데."

"그래? 위장크림, 카츄샤 간 친구가 안 썼다고 준 건데."

"여기 보면 '군대는 아드님이 일반 캠핑장으로 야영 갔거나 놀러 간 곳이 아닙니다'라고 쓰여있어. 그러면서 앱 이름은 왜 '더 캠프'래?"

"ㅋㅋㅋ"

국방부가 잘못했네. 그리고 던진 폭탄 발언.

"어? 우리 이거 못했다."

"뭘?"

"휴가 때 아들에게 달팽이 크림, 홍삼원 요구하지 말고 충성마트에서 직접 사가래."

"뭣이라? PX를 바로 이용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쓰여 있네."

"헐. 망했다. 단 한 번 이용할 수 있는 PX권을 놓쳤다니. 왜 그런 건 앞에서 안내 안 해주는 거야. 아들 손들고 나오라고 해. 다시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D-1, 아들, 군대가는 거 맞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