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차 유행 이후 우리의 주말은 집콕이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마트 장보기도 30분 안으로 스피드 하게 마무리한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갑갑증에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조차 답답함을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요즘이다.
딸아이의 기말시험이 끝난 주말, 예전 같으면 바람 쐬러 가자며 나섰을 법도 한데 남편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유튜브를 딸과 나는 보석 십자수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기 위해 양치질을 하고 나오는데 거실에서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가 새벽 1시. 누군가와 통화하기엔 너무 늦은(아니 이른인가??) 시간인데 말투로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시간에 누구랑 통화했어?”
“우리 회사에서 또 확진자 나왔대.”
“그래? 이번엔 어디래?”
덤덤하게 물어봤다. 이미 남편 회사에서는 두 명의 확진자가 나온 터였다. 한 번은 다른 건물에서, 한 번은 다른 층에서.. 두 번 모두 추가 확진자는 없었고 남편은 검사대상이 아니었다.
처음 남편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는 딸아이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큼 공포감이 컸었다. 코로나가 점점 내 주변으로 좁혀오는 듯한 기분이랄까. ‘감염되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동선을 되짚어보고 접촉한 사람을 하나하나 기억했었다. 하지만 TV에서 보던 건물 폐쇄도 없었고 재택근무 전환도 없었다. 뭔가 굉장히 허술한 느낌?
“우리 사무실.”
“어??”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남편 사무실은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에 나오는 삼진 그룹 사무실과 비슷한 구조다. 몇 개의 부서가 책상을 마주 보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콜센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지난주에 다른 부서에서 퇴사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금요일에 확진을 받았다네. 그리고 그 사람이랑 친한 사람이 토요일 그러니까 좀 전에 확진을 받았대. 그래서 같은 부서 사람들은 전부 검사를 받을 껀데 내가 그 부서 사람들이랑 친하니까 나도 받아보라고 박 차장이 카톡한 걸 오락하느라 지금 봤어.”
1년여의 코로나 사태 중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잠이 확 깼다.
“그분은 밀접 접촉자한테 검사받으라고 가는 문자 받았대?”
“모르겠어. 근데 밤 11시 반에 확진 통보받은 거라 그런 건 낼 아침에 가지 않을까?”
남편도 어지간히 당황스러운지 전화통화를 했지만 내용이 정확지 않았다.
상무님에게 상황 보고 전화를 걸고 다시 처음 연락을 했던 분과 통화를 했지만 워낙 늦은 시간이라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 외에는 아무도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나마 대략적인 상황 정리가 된 것은 다음날 아침.
확진이 나온 사람이 14일부터 몸이 안 좋았던 것을 통해 대략 9일을 감염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결국 밀폐된 사무실에 일주일 넘게 확진자와 사람들이 함께 생활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처음 확진자가 나왔단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도 남편도 당연히 선별 진료소에서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선별 진료소를 방문하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선별진료소에서 줄서다 감염이되는건 아닐까?'
‘보건소에서 연락도 없는데 굳이 먼저 나서서 감염을 확인해야 하나?’
‘무증상 감염이면 조용히 넘어가는 거 아닐까?’ 등등.
잠시 이기적인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코로나 확진보다 무서운 건 그 후의 삶이어서이지 않을까. 사무실 직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해서였는지 같은 부서 사람들이나 확진자와 밥을 같이 먹은 사람들 이외에는 선뜻 검사를 받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저도요?”라는 분위기. 하지만 결국 모두 검사를 받았고 하루 만에 추가 확진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천만다행인 동시에 신기한 일이었다. 마스크가 생활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잠시 잠깐 마스크를 벗는 순간이 있을 수뿐이 없는 데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다니..
그렇게 직원들 모두 음성을 받고 난 후 방역 당국의 재미있는(?) 방역 지침을 받았다. 사무실 상태를 본 방역당국은 완전 닭장이라며 심각하다고 했지만 사무실을 폐쇄하지는 않았다. 확진자와 같은 부서 직원은 모두 자가격리 2주. 그리고 확진자 옆옆 라인까지도 자가격리 2주. 그 옆자리부터는 능동 감시 대상자. 잉? 한 공간에서도 바이러스만 넘지 못하는 투명 방어막이 있나? 능동 감시 대상자는 검사 후 음성이면 일상생활을 이전과 똑같이 할 수 있다. 남편은 옆옆옆자리라 능동 감시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 방침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 학교에서 나온 확진자는 독서실에서 감염이 되었었다. 그 아이 역시 능동 감시 대상자였다. 그런데 나중에 확진이 되었다. 감염 확률을 낮게 보고는 있지만 충분히 감염이 되었을 위험군이다. 이런 식의 느슨해진 방역 방침에 확진자가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적게 늘어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또 한 번의 주말이 지났다. 다행히 우리 가족 누구도 증상을 보이진 않고 있다. 학교와 학원 모두 원격으로 전환된 딸은 집밖으로 나갈 일이 없고(이 녀석은 코로나가 아니라 근손실이 걱정이다. ㅜㅜ) 필수 인력인 능동 감시 대상자 남편은(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좋아해야 하나. ㅜㅜ) 씩씩하게 출근을 한다. 코로나 시대 1년. 이제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보다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하루를 버틴다.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안내 문자의 맨 마지막 문장. '보건소에서 하루에 1회 이상 연락드리며..'라더니 아직 한 번도 보건소에서 연락은 받지 못했다. 저흴 너무 믿으시는 건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