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경찰훈련센터에서 보낸 택배가 드디어 오늘 도착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경찰훈련센터를 떠난 지 11일 만에 도착한 아들의 짐. 제대 후 예비군 훈련 때 입을 군복과 전투화, 논산 훈련소에서 있을 때 출력해 받은 인편들. 그리고 친구가 부탁한 PX 화장품. 엄마껀 살 생각도 안 하고 친구 것만 샀다. 난 훈련소에서는 못 사는 줄 알고 부탁 안 한 건데.. 에휴.. 이 놈을 키워 어따 써먹누.. ^^
아들이 의경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왜 의경을 지원하는지 의아해했고 곰신이었던 적이 없는 나는 ‘니가 알아서 해’라는 마음 반, ‘설마 10:1이 넘는 경쟁률인데 되겠어?’라는 마음 반이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아들은 4월 지원한 의경 시험에서 13:1 의 경쟁률을 뚫고 덜컥 합격해 버렸다. 코로나 사태로 체력 시험을 거쳐야 하는 의경 시험의 경쟁률이 낮아진 탓과 평생 쓸 운을 쓴 덕분이었다.
군입대를 해야 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의경은 카츄샤 다음으로 좋은 직군이라고 한다. 소위 ‘꿀빤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편하다’는 뜻을 가진 비속어다.
아들이 의경에 지원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남편은 계속 나에게 “의경이 편한가? 육군 가서 고생하는 것도 추억인데..”라는 말을 하며 아들의 의경 지원을 못마땅해했다. 나는 나대로 ‘고생을 하지 않는 것은 잘된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풍요로운(?) 의경 생활이 우리 가족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었다. 물론 아들에게는 멋진 부모인양 “너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지만..
게다가 한 번씩 튀어나오는 남편의 “근데 의경이 편해?”라는 말은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왜 자꾸 말하는 건지 나 역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늘 조심스러운 나는 괜히 남편이 말실수를 해 아들과 트러블이 생길까 걱정스러워 미리 선수를 쳤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아빠는 육군 가는 것도 나중에는 좋은 추억이 될 거 같다는 거지. 주변에 의경 간 사람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시위에 의경이 나간다며. 요즘 광화문 집회 보면 코로나도 걱정이고 참가자들한테 봉변당할까 봐 걱정도 된다.”
에둘러 말한다고 했지만 나도 말주변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다. 분위기로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아들이 바로 맞받아쳤다.
“고생을 왜 사서해? 피할 수 있음 피하는 거지. 그래서 육군 가라고?”
“아니.. 니가 알아서 하는 건데 엄마, 아빠는 걱정이 되니까..”
“난 엄마랑 아빠가 하나만 했으면 좋겠어. ‘니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랬다. 아들 말처럼 “엄만 잘 모르니 니가 알아서 해.”라고 하고 막상 아들이 결정을 하면 “근데 그거 맞아?”라고 반문을 하며 아들의 선택을 지지하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곤 했다. 잊고 있었다. 어른들의 ‘다 ~~ 너 잘 되라고’라는 말의 다른 의미를..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간혹 있으니 차마 ‘없다’고까지는 말 못 하겠다. ^^) 그래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야.”
“엄마가 너한테 안 좋은 일 시키겠니?”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
문제는 주체가 누구냐는 것. 부모인 ‘나’가 주체가 아닌 ‘아이’가 주체여야 하는데 우리는 종종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빼앗은 것은 아닐까. 요즘 나는 아들에게 ‘니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잘 되지는 않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