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느 집인지 모르겠는데 오락하나 봐. 하루 종일 소리 지르는데 다 욕이야. 시끄러워 죽겠어. 재는 학교도 안 가나?”
'응. 안가. 요즘 다 안가.'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증가했던 작년 여름, 우리 집도 층간소음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아마도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가 부모님은 직장에 나가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 오락을 하는 듯했는데 너무 몰입을 한 듯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퇴근하고 오는 오후 시간에는 조용해진다는 것이었다. 딸은 내가 오기 전까지 고함소리에 시달렸는데 정작 엄마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소리에 억울해했다. 아파트의 소음은 정확한 위치 파악이 쉽지 않다. 분명 위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윗윗집이거나 옆집에서 나는 소리인 경우도 있어 요즘같이 살벌한 세상에 무턱대고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역시 대략 옆집 혹은 그 아랫집이지 않을까 추측만 했을 뿐 끝내 범인을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소음은 창문이 닫히는 겨울이 되며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창문이 닫히니 이번에는 쿵쿵거리는 층간소음이 시작되었다.
나는 층간소음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는 윗집의 층간소음이 때로는 혼자인 무서움을 없애준다고 하시는데 내 경우에는 편두통을 일으킬 만큼 큰 고통이다. 가끔 뉴스에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 간에 칼부림이 났다는 신문기사를 볼 때면 폭력은 잘못이라 생각하면서도 폭력을 휘두른 층간소음 피해자의 마음이 먼저 이해가 될 정도다. 내가 층간소음에 이렇게까지 예민해진 것은 7년 전 살았던 나 홀로 아파트에서 겪은 일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이유로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 우리 동네는 재개발로 인해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다. 전셋집뿐만 아니라 그냥 집이 없었다. 총 7천 세대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 사업은 지역의 돈 없는 원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내몰았다. 그해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서 100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전학을 갔다. 집이 귀하다 보니 전셋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집이 있다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으면 고민할 시간도 없이 집을 본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걸고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내 집이 아닌 전셋집이지만 집에 하자가 있는지 대출 문제는 없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계약을 한다는 것이 영 찜찜했던 우리는 결국 내 집이 아니면 아파트에 살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고집을 뒤로하고 나 홀로 아파트를 계약했다. 이유는 하나, 깡통집이 아닌 곳은 그곳뿐이었다. 우리가 본 몇몇 집들은 거품이 낀 집값을 믿고 대출을 잔뜩 받은 탓에 만일의 경우 전세금을 100% 돌려받기 어려운 집들이 었다. 그렇게 첫 아파트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의 첫 아파트는 40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아파트였는데 8차선 대로변에 있었다. 대로변 너머로는 작은 개천이 있고 앞을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 하루 종일 해가 집 안 가득 들어왔다. 나는 거실에서 내려다보는 개천이 좋았다. 봄이면 벚꽃을, 겨울이면 눈꽃을 집에서 즐길 수 있었다. 집 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은 자동차 소음과 매연으로 인한 시커먼 먼지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좋았다. 하지만 층간소음은 아니었다.
아파트로 이사하며 아이들에게 누구를 만나건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하라고 시킨 덕분에 아파트의 어르신들과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윗집의 어르신을 만난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오신 분이구나. 애들이 예쁘고 인사를 참 잘해."
"감사합니다."
"... 우리 집은 노인네들만 사는데 가끔 손녀들이 놀러 와요. 그래서 가끔 시끄러울 수 있으니 미리 양해 좀 부탁해요."
"아.. 네. 괜찮아요."
그때는 몰랐다. 윗집 어르신의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가끔' 놀러 온다는 윗집 손녀들은 1년이면 10달을 와 있었다. 둘째와 비슷한 나이 또래였는데 하루 종일 집에서 뛰어놀았다. 의자 끄는 소리는 애교였다. 우당탕 우당탕, 집 안 곳곳에서 축구를 하는 듯 뛰는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고 어느 날은 줄넘기를 하는 듯 휙, 착, 쿵, 휙, 착,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 뛰는 소리에 함께 놀아주는 듯한 어른들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까지 더해져 우리는 매일매일 공사판 한가운데서 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한 윗집 어르신의 말씀도 있고, 나도 아이키우는 사람이니, 주말만 참으면, 낮에만 참으면,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버티기 힘든 날은 소음을 피해 최대한 집을 비웠다. 친정으로, 친구 집으로 방랑 아닌 방랑 생활을 했다. 내 집인데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웃긴 상황이긴 했지만 이웃과의 불화를 피하고픈 마음에 노력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멈추지 않는 소음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게 했다. 층간소음은 단순히 소리만이 전달되는 것이 아닌 집 전체에 진동이 느껴진다. 없던 두통이 생기고 매일 진통제를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참다못한 남편이 윗집으로 올라갔다.
층간소음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가해자, 피해자 모두에게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보통 층간소음의 가해자는 윗집, 피해자는 아랫집인 경우가 많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일부러 작정하고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아이를 기르는 집이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아이들이 일으키는 소음을 막을 수가 없다. 수시로 조용히 해달라는 아랫집의 요구를 듣다 보면 윗집 역시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온 집안에 매트를 깔고 낮동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고 아이를 조용히 시키다 지쳐 아이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민원은 윗집이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된다. 이제 윗집 아랫집 모두 감정이 상한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윗집은 "아니, 숨도 쉬지 말라는 거야? 이 이상 어떻게 조용히 해."라는 맘이 들며 억울해진다. 아랫집이 보기에 적반하장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상중 버전)
층간소음의 피해자들은 어느 날 들린 한 번의 소음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참다 참다 극한의 상황이 왔을 때 민원을 제기한다. 극한의 상황이 되면 윗집에서 나는 아주아주 작은 소리조차 신경에 거슬리게 된다. 이전까지는 생활소음쯤으로 치부해 신경 쓰이지 않던 아주 일상적인 소리들이 모두 엄청난 소음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가 되면 윗집의 미안해하는 모습도, 죄송하다며 내미는 선물도 아랫집에겐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결국 파국이다.
우리도 그랬다. 처음에는 미안해하시던 윗집 어르신들은 우리가 찾아가는 횟수가 잦아지며 억울하다는 태도를 보이셨다. 하루 종일 애들 데리고 밖에 나가 있어 힘들다는 둥(안 나가시던데요)가끔 오는데 그런다는 둥(같이 사는 줄)하는 식으로 젊은 사람들이 유별나게 군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 윗집과의 사이는 점점 나빠져갔다. 그리고 언젠가의 주민회의 이후 나는 윗집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날 주민회의에 참석한 윗집과 이웃들의 말 때문이었다.
"아휴, 요즘 내가 사는 낙이 없어. 손녀들이 놀러 와서 춤추고 뛰어노는 거 보는 낙에 살았는데 하도 시끄럽다고 해서 내가 이젠 오지 말라고 했어. 노인네들만 있으니 집이 너무 삭막해."
윗집 어르신이 한탄하자 비슷한 연배의 다른 이웃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휴, 애들이 다 그렇지. 좀 뛴다고 뭘 그렇게 난리야. 뛰면 얼마나 뛴다고."
'얼마나 뛰는지 1시간만 와서 계셔 보세요. 하루 있으심 골이 울리실껄요.'
"그래 그래. 같이 애들 키우는 집이 그런 건 좀 이해하고 그래야지."
'저희 집 애들 뛰는 소리 들으신 분!!! 아랫집에서 애들 키우는 집에서 어떻게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냐는 게 저희집입니다.'
"암튼 요즘 것들은 배려가 없어. 도대체 어느 집이야?"
'저요!!!'
졸지에 나는 배려 없는 요즘 것들이 되어 있었다.
억울함에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데 어르신들의 동지애(?)는 견고했고 무엇보다 윗집분은 그 아파트의 자잘한 고장을 무상으로 수리해주며 아파트 관리비의 수선유지비 부담을 낮춰주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의 비위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5년을 살고 그 집을 떠났다. 불편한 윗집과의 동거가 이사의 절대적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 집을 사지 않은 중요 원인이기는 했다. 그 집에 살며 다음에는 꼭 윗집이 없는, 층간소음 걱정 없는, 꼭대기층으로 이사 가리라 다짐하곤 했는데 결국 나는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7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고 한동안 나는 층간소음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윗집에서 의자 끄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층간소음이 시작되나 싶어 귀를 곤두세우기 일쑤였다.
'한 번만 더 소리 내봐. 내가 뛰어 올라간다. 나도 이제 안 참는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지기까지 난 언제나 층간소음에 대해 전투태세였던 것 같다.
내가 윗집에서 나는 생활소음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런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기까지 2년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문득 7년전 나에게 층간소음의 실상을 알려준 윗집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손녀들도 고등학생이 되었을텐데 여전히 외할아버지집에 자주 놀러올까? 여전히 거실을 운동장 삼아 체력을 기르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체육인이 됐을수도.(그정도 운동량이면 되고도 남을 듯)
아~~ 아깝다. 그 윗집으로 이사가 한바탕 굿을 했어야 하는데.. ^^
p.s. 어디까지나 제 경험으로 쓴 글이에요. 별난 아랫집때문에 윗집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층간소음을 유발했다해서 모두 가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이후의 행동이 더 중요하죠. 사실 층간소음 문제에 가해자,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