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면 설날이다.
코로나 시대의 명절은 이래도 저래도 맘이 편하지 않다. 지난 추석 우리 가족은 시댁에 가지 않았다. 큰 아이 고 3 때, 아들과 둘이 집에 남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가족 전체가 시댁에 가지 않은 명절은 처음이었다.
‘서울의 명절이 이랬구나.’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서울의 명절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명절 때만 살기 좋아 보이는 도시다. 늘 사람으로 빼곡히 차 있던 서울의 거리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시기가 명절이다.
작년 추석 때만 해도 코로나 사태가 설까지 이어질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장기화될 꺼란 예상은 했지만 3차 유행 상황이나 그 상황이 이렇게 장기화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더 심각한 상황이 될 거란 것도. 그런데 요즘 우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3차 유행의 확산세보다 더 큰 문제에 직면했다.
설에 시댁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아마 많은 집들이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듯했다. 포털 사이트에 이 문제로 고민하는 며느리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었다. 기사의 내용인 즉 다들 예상하다시피 시부모님이 먼저 오지 말라고 했다는 집은 극히 일부이고 추석에도 못 봤으니 꼭 오라는 시부모님 때문에 한숨 나온다는 집부터 효자 아들인 남편이 꼭 가야겠다고 해 답답하다는 집, 제사 음식을 해야 하니 며느리만 오라는 집(이 집은 진짜 뭐지 싶네요. 꼭 가지 마시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풀빌라 2개를 빌려 4명씩 잠자고 놀 때는 밖에서 모여 놀자는 집 등 설날 시댁 방문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등장하고 있었다. 뒤를 이어 비슷한 처지의 며느리들이 '방역수칙 위반으로 서로 신고를 해주자'는 말로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이런 기사에 대해 누군가는 '오죽했으면'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얼마나 시댁에 가기 싫으면, 쯧쯧'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며느리와 시댁은 늘 그렇듯 이해보다는 오해가 더 쉽게 쌓이는 관계니까.
사실 이 문제의 해답은 간단하다. 시댁에서 오지 말라고 하면 된다. 아들이나 며느리 입장에서 먼저 방역수칙을 운운하며 가지 않겠다고 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하면 며느리가 시댁에 오기 싫어 그런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며느리 입장에서 시댁 방문이 즐거운 사람은 많지 않을 테지만(남편들도 처가 방문이 편하지만은 않듯이 말이죠)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하기 싫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지는 않는다. 물론 명절은 가족들이 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한 집안이나 오랫동안 자식을 보지 못한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먼저 '오지 말라'라고 말하기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건 양쪽 모두 매한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정부에서는 또다시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표어를 내보내고 유교사상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차례를 모시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세워 설날 고향 방문 자제를 외치고 있다. 직계가족 간에도 '5인 이상 집합 금지'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걸리면 인당 1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집에서 만나는 가족 간 모임을 어떻게 감시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통제만으로 방역을 성공했다는 K-방역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차라리 설 연휴만이라도 이동제한을 하면 '오지 말라'라고 말해야 하는 어른들도 '못 갑니다'해야 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을까? 쓰다 보니 정부가 제일 치사하다.
정부의 자발적 참여라는 슬로건 덕분에 이번 명절도 K-며느리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K-방역에 며느리들은 오늘도 웁니다.
그런데요.
어떤 기사에도 친정 방문이 고민이라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어째서일까요???
진짜로 친정과는 문제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기자분들이 의도적으로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을 부각하고 싶어서인지 궁금합니다. 후자라면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않아도 힘든데 그런 기사 볼 때마다 더 힘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