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고3은 코로나 단계와 상관없이 매일 등교다. 작년 격주 등교를 하고 보니 학업능력 저하보다 불규칙한 생활에 따른 체력 저하가 더 큰 문제였기에 매일 등교가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지........................
한 반 30명 남짓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 듣고 선택과목에 따라 이반 저반 이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스크 벗고 급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백신 접종. 백신을 맞으면 일어난다는 당연한 면역반응도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고 3에게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예정대로라면 7월이나 9월에 차례가 돌아올 텐데 수능 뒤로 미룰 수도 없고 미리 맞는 것도 안 되니 이래저래 참 고민스럽다. 물론 담당자들은 이런 것까지는 신경 써 주지 않겠지만..
등교한 첫 주, 하교한 아이가 그 날 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 오늘 우리 반 급훈을 정했거든.”
“그래?”
나는 속으로 ‘급훈이나 교훈 따위 누가 신경이나 쓰나.’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급훈 말하랬더니 어떤 애가 ‘한남동 살래? 한남이랑 살래?’ 그러더라.”
‘한남’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담임쌤이 뭐라 안 하셨어?”
“담임쌤은 상담 중이셨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쟤네들이랑은 말 섞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 여고엔 그런 애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특히 우리 학교. 1학년 때 그 애들도 남성 혐오 쩔었거든. 남자애가 사귀자고 해도 안 사귀꺼라나? 누가 보면 남자애들한테 인기 엄청 많은 줄 착각할 뻔. 정작 남자애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듯한데 자기네들끼리 온갖 상상을 하며 남자 혐오 발언을 했잖아. 아무튼 잘못된 페미니즘을 가진 애들 너무 많아. 그런 주제에 당당하긴 되게 당당해.”
“큰일이다. 벌써부터 잘못된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어서 어쩐다니.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나 여성 우월주의가 아닌데..”
“나도 남자애들 싫지만 난 남성 혐오나 여성 우월주의는 아니거든. 남자건 여자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애들이 싫은 거지. 근데 요즘은 방송에서 특히 트위터에서 잘못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그런 사람들 목소리가 더 커서 문제지. 올바른 소리는 안 들리고 잘못된 소리가 사람들을 선동하니까. 너도 SNS 볼 때 가려서 봐. 그래서? 그 말에 다른 애들이 다 동조했어?”
“아니. 자기들끼리 그 얘기하고 낄낄거리고 웃는데 순간 반 분위기 싸~~ 해졌지.”
“뭐라고 하는 애들은 없고?"
"응. 그냥 말 섞기 싫은 거지. 말해봤자 분위기만 더 나빠질 테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개인주의가 미덕(?)인 세상 아니던가. 게다가 모든 생각이 대입에 가 있는 고 3이니..
"그래서 급훈은 뭐로 정했는데?”
“니 내신을 알라.”
“아.. 뼈 때리는 말이네. ㅋ”
꼰대가 되어 가는 걸까? 예전에는 그저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기던 이야기들이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기술과 지능의 발달에 대한 대가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조금은 불편했던, 하지만 살아볼 만했던 예전이 그립다. 사람들은 늘 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언제든 기회만 되면 아무에게나 그 분노를 터트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슬프다. 결국 사람이 답이라고 하는데 왠지 그 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하던데... 믿고 싶은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