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민족’이 ‘배달의 민족’이 되기까지
고사미의 홍삼이 떨어졌다.
고사미 영양제로 홍삼을 선택한 것은 홍삼이 딱히 좋아서라기보단 단지 입 짧은 고사미가 그나마 먹는 것이 홍삼이기 때문이다. 대장금 미각에 초딩 입맛을 가진 고사미는 홍삼을 선택하는 기준도 까탈스러워 스틱형은 입에 남는 맛이 쓰다, 안 먹는 탓에 액기스로만 산다. 이쯤 되면 영양성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냥 고사미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사는 게 맞다. 그나마 늘 먹는 홍삼액기스에 진세노사이드 성분이 이전보다 늘어 다행이다. 늘 먹는 홍삼액기스를 인터넷에 검색해 최저가를 찾았다. 공구한다는 알람이 왔을 때 사 둘 껄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행히 공구가와 근접한 최저가로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네이버플러스멤버쉽 혜택도 없고 공식 홈페이지의 적립금 혜택도 없지만 언제 쓸지 모르는 적립금보다 당장의 할인이 더 좋다는 게 내 나름의 개똥철학이랄까.
로켓 배송, 4월 17일(토) 도착 보장이라는 문구보다 매진 임박(7개 남음)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조급해져 출근하는 남편에게 주문을 부탁했다.
"급해?"
"아니. 급하진 않은데 매진될까 봐."
"회사 가서 할게."
"응."
조금 뒤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이거 맞나?
그건 왜?
쓰라는데.
써도 돼? 그럼 우리 바꿔야 하는 거 아냐?
괜찮아.
.
.
주문 완료. 내일이면 오겠네.
땡큐~~
그리고 당일 저녁 11시 무렵 문자 한 통이 왔다.
[쿠팡] 로켓 배송 1박스 문 앞(으)로 배송 완료했습니다.
한밤중 소리도 없이 문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상자를 들고 오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벌써 왔어? 엄청 빠르네."
"그러게."
홍삼을 꺼내고 커다란 쿠팡 박스를 정리하는데 왠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스피드 한 택배 배송 서비스를 위해 누군가는 밤낮이 바뀌고 누군가는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일까.
처음 알라딘에서 당일 배송이라는 서비스를 들고 나왔을 때 나는 열광했었다.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받는 택배가 가능하다니.. 딱히 급할 것 없는 물건이라도 빠르게 받아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무료배송으로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알라딘, 예스 24에서 시작된 당일 배송 서비스가 쿠팡으로 넘어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일배송이 마켓 컬리의 새벽 배송으로 이어지고 쿠팡의 로켓 배송이 당일배송과 새벽 배송 중간 어디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 알라딘은 양탄자 배송이라는 새로운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일 배송을 조금 더 세분화한 것인데 ‘주문은 최대한 늦게, 배송은 최대한 빠르게’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택배 배송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듯한 모양새다. 이 말은 비정규직 택배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하영 작가의 <뭐든 다 배달합니다>라는 책을 보면 코로나 이후 늘어난 다양한 배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쿠팡맨, 배민 커넥터, 카카오 대리 기사 등. 이전에는 투잡, 쓰리잡의 개념으로 이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로 택배 물량이 늘어나고 비대면 배달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쿠팡 물류센터와 배민 커넥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사람들이 PDA의 지시에 따라 물건을 담는 일을 한다고 한다. 배민 커넥터 역시 AI가 최적의 거리를 계산해 배치해 주는 곳에서 음식을 받아 배달을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생각은 기계가 하고 일은 사람이 한다는 건데 기술의 발달은 거꾸로 되기 위한 게 아니었나? 힘든 일은 기계가 하고 그것을 조종하는 건 사람이 하는.. 그런데 지금은 왠지 편한 일은 기계가 하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사람이 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쿠팡맨은 과로사하고 배민 커넥터는 사고에 위험을 안고 달린다. 빠르게 더 빠르게, 기계의 지시에 따라.. 나는 대가 없는 편리함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