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미 May 05. 2021

아내를 쿠션으로 착각한 남자


새벽 1시

침대에 누운 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았다.  잠자리에 든 아이들의 방문을 닫아주는 건 아주 오래된.. 습관 같은 거였다. 지금은 군대에 간 아들 녀석도 집에 있을 때는 꼭 방문을 닫아 주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 나 잘게.”라고 이야기하고 들어가 불은 끄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나를 기다린다. 그러면 나는 잠시 시간을 두고 방으로 가 잘 자라고 이야기한 후 방 불을 끄고 문을 닫아준다. 내가 방문을 닫아주지 않는 경우는 세 가지 경우뿐이다. 내가 집에 없거나 아프거나 아이들이 새벽까지 노느라 잠을 자지 않는 경우.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23살 아들이나 19살 딸이나 똑같이 하는 밤의 루틴이다.




거실을 정리하고 남편이 잠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 남편의 얕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잠이 드는 날들과 몸에 열이 올라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날을 오가는 남편인데 오늘은 다행히 잠이 잘 드는 날인가 싶어 안심했다. 남편이 몸에 열이 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신경이 한껏 날카로워져 얕은 잠을 자는 탓에 까치발을 하고 방에 들어가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누워야 했다. 행여 얕은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탓이다.




오늘도 침대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자는 남편과 그의 잠자리 친구들(퀸사이즈 쿠션과 베개들)을 피해 침대 끝자락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오래된 침대의 스프링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준다는 광고 속 매트리스로 바꾸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는 순간 남편이 돌아 누우며 나에게 다리 한 짝을 올려놓았다.

‘윽.. 무거워.’

남편이 깰세라 숨죽이며 꼼짝않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내 등에 찰싹 달라붙으며 잠꼬대처럼 말했다.

“으~~ 시원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수족냉증이 있는 내 발과 다리의 시원함을 느끼며 자던 남편이 다시 반대로 돌아 누웠다. 이번에는 한참을 떨어져 있어 다시 시원해진 쿠션에 다리를 올려놓으며 단잠을 이어갔다.

‘이 남자 아무래도 날 쿠션으로 아는 것 같다. 내 몸매가 좀 통자이…ㄴ가?’




가끔은 침대에서조차 남편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각방을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침대 끝에 매달려 자지 않아도 되고 잠 못 드는 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각 방 혹은 각 침대를 쓰는 것이 딱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집을 비워 퀸 사이즈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자던 밤, <평범한 결혼생활>에서 임경선 작가가 이야기했던 ‘편안함의 동전 반대편은 외로움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커다란 침대를 혼자 쓰는 편안함 뒤에 텅 빈 남편의 자리가 너무 허전하게 느껴졌다. 얕은 코 고는 소리나 돌아누울 때마다 출렁거리는 매트리스의 움직임이 없는 침대가 혼자라는 외로움으로 다가왔다. 함께 할 때는 한없이 귀찮고 성가실 때도 있지만 없으면 외로운… 그런 사람이 남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진심을 알아버린 순간(2) - 딸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