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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12. 2021

중년이라는 세계



“아구구구구 아구”

이것은 서울에 사는 모씨가 자리에 앉을 때 나는 소리입니다.


“읏샤”

이것은 서울 사는 모씨 아내가 일어날 때 내는 소리입니다.


“어이구야”

이것은 서울 사는 모씨가 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집을 때 나는 소리입니다.


“끙차”

이것은 서울 사는 모씨 아내가 의자에 앉을 때 나는 소리입니다.


 

거실에서 소파를 주로 이용하는 아이들과는 달리 남편과 나는 거실 바닥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앉는 것 반, 눕는 것 반이라고 해야 맞겠지만.. ^^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가죽 소파를 구입했다. 이전 집에서는 2인용 소파였는데 한 사람이 소파를 차지하면 다른 사람은 소파를 이용하지 못하는 작은 크기였던 탓에 우리 가족은 대부분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곤 했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남편은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소파를 고르는데 엄청 공을 들였다. 아마 서울 근교에 있는 가구 단지는 다 다닌 듯. 팔걸이 부분은 누울 때 머리를 댈 수 있도록 각지지 않아야 하며 잘 헤지지 않는 고급 가죽이어야 하는 반면 가격은 싼? ㅋㅋ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나란히 앉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여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소파에 가족 4명이 나란히 앉을 일이 얼마나 있다고 그 크기를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가구 매장에서 30평대 아파트에 들어가기에는 크기가 좀 크다면서 대부분 한 치수 작은 사이즈를 권해주었지만 남편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 집 거실의 한쪽 벽면은 거대한 소파가 차지하게 되었다. 남편의 희망대로 4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한 사람이 소파에 누워도 반대편에 한 명이 거뜬히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문제는 너무 길어 중앙에 앉아야지만 TV를 똑바로 볼 수 있다는 점. 양 옆으로 가면 뭔가 사선으로 TV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런 탓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TV를 볼 때면(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한 명은 소파에 비스듬히 눕고 나머지 세명은 소파를 등받이 삼아 나란히 거실에 앉아서 보곤 한다. 이럴 거면  큰 소파가 왜 필요했던 거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거실 바닥에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에구구구" , "으쌰" 같은 기합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어찌 들으면 한탄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는 짜증 섞인 소리 같기도 한, 다양한 소리들이었다.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나는 소리인 탓에 나는 내 소리를, 남편은 남편의 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는 남편이 "으 ~~ 구구구"하며 소리를 내기에 "어디 아파?"하고 물었더니 "아니? 왜?" 라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듯 쳐다봤다.

"일어날 때 신음소리를 내기에. 무릎 아픈가 하고."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요즘은 일어나거나 앉거나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기합을 줘야 하더라고. 당신은 안 그래?"

남편의 말을 듣고 나니 나 역시 앉았다 일어날 때면 나도 모르게 예전 할머니들이 그런 것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네. 나도 저절로 소리가 나긴 하더라고. 살쪄서 그런 건가? 엉덩이가 무거워서?"

"ㅋㅋㅋ 그럴지도. 운동해야겠다. 이러다 아예 못 일어날라."

"그러게. 몸은 벌써 80살인 것 같아. 이렇게 오래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다."








요즘 들어 나이듦이나 노후 준비, 건강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30대나 40대 초반의 노후에 대한 생각이 막연한 불안감이었다면 40대 후반인 지금의 불안감은 현실적이다. 천성이 끈기가 없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그간 따로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았다. 행여 쉽게 죽지 못할까 영양제도 보약도 안 먹는다.. 는 건 핑계고 챙겨 먹기 귀찮다. 내 최고의 운동은 숨쉬기 운동 정도? 그런데 40대 초반까지는 그럭저럭 버티던 몸이 중반을 넘기면서 눈에 띄게 변했다. 몸무게가 늘고(숨만 쉬어도 느는 것 같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서의 각종 검사 지표도 추적 요망군으로 바뀌었다.(원치 않는 선물을 잔뜩 받은 기분이랄까.) 무엇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힘이 들었다. 체질량 측정 결과 근육 거의 없음? 이게 다 물살이라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혼자 걷지도 못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면 어쩌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코앞에 다가온 기분이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이라는 책에서 보면 개인주의가 강하게 자리 잡은 경우가 아니라면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누군가에게 몸을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강한 소망. 아마 어르신들이 매일 산을 오르는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건강하게 생을 마감하고픈 마음.



의학의 발달은 사람에게 <장수>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지만 <무병>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유병장수>보다는 짧고 굵게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인데 벌써부터 각종 곡소리를 내는 우리를 보니 걱정이 앞선다. 어릴 때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저절로 득도한 노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이듦이 딱히 서글프진 않았다. 질풍노도 같은 격정의 시기(청장년기)가 지나고 나면 중년은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할 수 있고 노년은 호수의 잔잔한 물결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게 찾아온 중년은 이전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건강해지려 노력해야 하는, 여전히 격정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잘못하면 이전보다 못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꺼라니. 젊을 때는 잘 먹고 잘 자면 건강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운동을 더해도 건강은 자꾸 안 좋아진다. 젊을 때는 지식만 쌓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지덕체를 쌓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노력해서.. 삶이란 살수록 어렵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곡소리로 하루를 마감했다.

“에구구구구. 허리야.”

“으쌰. 아빠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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