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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Apr 28. 2021

남편의 진심을 알아버린 순간(2) - 딸편


한참 연예인의 학교폭력이 기사화되던 시기였다.

뉴스에서 나오는 기사를 듣다 남편이 물었다.

“쟤는 또 누구야?”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나오던데 장난이 아니던데.. 이름 말해도 자긴 모를걸. 요즘 아이돌들 얼굴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나는 잘 모르겠더라고.”

“진짜 걔는.. 폭로되는 글 보니까 여태껏 학교폭력으로 올라왔던 아이돌들과는 차원이 다르더라. 그 정도면 그냥 범죄자야.”

“그 정도야?”

“그냥 좀 놀고 얘들 괴롭히던 정도가 아니라 성폭력도 했다고 하더라고.”

“기사에 올라오는 글 100% 다 믿지 마. 요즘은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더라. 일단 잘못된 기사가 보도되고 나면 나중에 오보였다고 정정해도 이미 기정 사실화돼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 잘 가려서 받아들여야 해.”

“응. 근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 보면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사실 아닐까? 도대체  학교폭력 가해자 주제에 연예인 할 생각을 어떻게 하지?”

“연예인이 될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 기회가 왔나 보지.”

“기회가 와도 그건 아니지. 피해자들이 볼 텐데 무슨 낯짝으로..”

“학교폭력을 저지른 것 자체는 잘못한 건데.. 엄마는 정말 만에 하나 그걸 뉘우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에게조차 제대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봐 그건 좀 걱정돼.”

“그렇긴 한데..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받았으면 이런 이야기가 안 나왔겠지.”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근데 그 애들은 학교 잘 다니냐?”

남편이 갑자기 그 애들을 소환했다.

그 애들이란 딸의 고등학교 1학년 같은 반 아이들로 소위 말하는 학교폭력 가해자들이었다.






딸은 지금의 고등학교에 소위 말하는 튕겨서 들어갔다. 1 지망부터 3 지망까지 쓰게 되어 있는 현 고등학교 근거리 배정방식에서 도대체 왜 쓰지도 않은, 거리도 젤 먼 학교로 배정이 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근처 학교 중 내신이 가장 빡세기로 유명한 여고였다. 고등학교 배정을 받고 딸은 1주일을 울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같은 중학교에서 간 친구들은 고작 10명. 그마저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낯선 학교에 혼자 뚝 떨어진 아이는 등교 첫날부터 삐그덕거렸다.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만의 문화가 있다. 바로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습성이다. 특히나 또래 무리 문화는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화장실조차 함께 가야 하는 여자아이들에게 있어 무리에 들지 못하면 그게 곧 왕따인 셈이다.


딸은 당장 급식을 같이 먹을 친구가 있어야 했고 이동 수업을 하는 동안 함께 복도를 걸어갈 친구가 있어야 했다. 낯선 환경에 기죽어 우왕좌왕하는 사이 또래 무리는 생각보다 빨리 형성이 되었고 이미 형성된 또래 무리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이 꼬이려면 평소라면 괜찮았을 일까지 모두 꼬이고 꼬인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매듭이 생겨버린다. 아이가 더 당황스러웠던 건 한 번에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아이 주변에는 늘 친구가 많았고 늘 무리가 있었기에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나 무리를 짓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의 이런 상황을 안 것은 4월이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아이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었고 먹지 못해 체중이 한 달 만에 3킬로나 빠져 딱 맞게 산 교복이 헐렁해졌다.



한 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두 번째 학기. 다행스럽게도 딸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문제는 그 친구가 속한 무리의 한 아이였다. 자기중심적인 그 아이는 딸에게 기우는 다른 친구들의 관심을 시기하다 결국 교묘하게 다른 아이들을 조종해 딸아이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들이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이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나중에 담임선생임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딸을 괴롭혔던 이유가 엄마와 사이가 너무 좋아서 부러워서였다고 한다. 차라리 이기적인 마음이었다면 미워하기 쉬웠을 텐데 황당한 이유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해도 집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데 딸은 엄마, 아빠, 담임 선생님에 학생부 선생님 나중에는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니 그것이 너무 부러워서 괴롭혔다고. 문득 애정결핍이 얼마나 많은 잘못을 불러오는지 깨달았다. 선천적 인격장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범죄의 종류에 상관없이 자라면서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결핍이 그 근본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이는 끝내 그렇게 살겠지.








다시 생각하니 열이 받는 듯 딸이 말했다.

“당연하지. 자기네끼리 찢어지고 제일 문제 많은 둘이 붙었어. 이간질하는 애랑 애정결핍인 애랑.”

“전학 안 가고 다녀?”

“개네가 왜 전학을 가. 자기네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는 애들인데.. 엄청 잘 다녀. 그런 애들끼리 모여서.”

“원래 그런 애들이 뻔뻔하게 잘 살아. 어휴~~ 그때 일만 생각하면..”

“그땐 진짜 학교 가기 싫어서 엄청 천천히 기어갔잖아.”

“엄마도 너 최대한 늦게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안 보낼 수도 없고 엄마도 참 힘들었다.”

“진짜 그땐 죽고 싶은 생각뿐이 안 들더라.”

“그래도 잘 견뎌내 줘서 고마워. 아빠한테도 많이 고맙고.. 아빠마저 그게 무슨 큰일이란 식으로 얘기했음 더 힘들었을 텐데 암말 안 하고 편들어줘서 엄만 그게 제일 고맙더라.”

가만히 듣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그땐 정말 학교 앞에다 너 내려다 주고 내비에 ‘집으로’라고 다시 찍는 게 너무 미안하더라.”

뜻밖의 남편의 고백(?)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20년은 살았지만 난 아직도 남편의 기분 변화를 100% 알아채지 못한다. 맑다가 갑자기 흐려지는 하늘처럼 남편의 기분은 그렇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했다. 남편이 한숨을 쉬거나 얼굴이 어두워지면 우리는 가급적 남편을 피한다.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이런 상황이 그저 무섭게 느껴졌기에 숨기에 바빴는데 크면서는 짜증스럽게 변했다. “아빠 또 왜 그래? 갑자기 이유도 없이..” 우리끼리 속닥이다 마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것이 몇 해전부터는 내가 슬쩍 눈치를 보다 남편의 기분이 확실히 좋아 보일 때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당신 아까 기분이 왜 안 좋아졌어?”

“나? 아닌데?”

“맞는데.. 한숨 푹푹 쉬고 목소리에도 짜증이 묻어나고.. 애들이랑 나랑 눈치 보느라 힘들었는데.”

“진짜 아니야. 그냥 습관이야.”

이것도 유전인가? 시어머니가 이런 식이셨다. 한껏 업되셨다 갑자기 짜증을 내시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깜빡이는 키고 들어오셔야 준비라도 할 텐데 예고도 없는 탓에 당하는 사람은 두배로 기분이 나빴다.


‘남자, 여자 몰라요. 여자, 남자 몰라요’라는 개그 속 말처럼 남편은 아이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인 남편 입장에서는 그깟 일이라는 생각이 많았고 도망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있을 텐데 도망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를 등교시키는 길 남편의 굳은 표정은 늘 신경이 쓰였다. 그게 그런 의미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나에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난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어.”

“엄마도. 표정이 안 좋아서 엄마는 너한테 유별하다고 할까 봐 늘 조마조마했거든. 그런 생각인 줄 전혀 몰랐네.”

“나 좀 감동했잖아.”








말이란 것은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진심이 전달되기도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도 하니 말이다. 남편은 자신이 한 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여전히 툭툭 생각 없이 내뱉는 말로 딸과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날의 말덕분에 우리의 기분 상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기왕이면 다정하게 진심을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말 뒤의 의미를 우리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오늘도 딸은 남편 때문에 울었다.

한참 성폭력에 열을 올리는 딸에게 남편이 짜증스럽게 던진 “아침부터 왜 열을 내고 그래.”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 말투에 기분이 상한 딸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이제 딸이 아빠를 싫어할까 봐 걱정하지 않는다. ‘집으로’라는 말조차 미안해했던 아빠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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