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이 힘든 집순이의 요즘 일상

by 꾸미



새벽 1시. 방에서 공부하던 딸아이가 갑갑함을 호소한다. 안절부절. 갑자기 너무 가슴이 답답하다는 딸. 그럴 만도 하다. 코로나 19 때문에 개학이 3주나 미뤄졌다. 집순이인 나도 막상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하지만 딸의 이런 갑갑증은 고1을 지내면서 얻게 된 초기 공황 증상이다. 한동안 잘 지냈는데 요즘 상황이 또 불안한가 보다.


“엄마랑 한 바퀴 돌고 올까?”

“아냐, 괜찮아.”

너무 늦은, 아니 너무 이른 시간에 엄마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 괜찮다는 딸. 다시 물었다.

“엄마 쓰레기 버릴 겸 한 바퀴 돌고 올까?”

나갈 이유를 만들어 주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며 ㅃ배시시 웃는 딸.

“그럼 그럴까?”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수면 바지에 롱 패딩을 걸쳐 입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딸과 함께 집을 나섰다. 공동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딸이 숨을 크게 들이쉰다.

“아~~ 시원해. 숨 쉬는 것 같다.”

작년 한 해 딸과 참 많이도 밤거리를 걸었다. 그때마다 딸이 하던 말이다. 숨 쉬는 같다고.

쓰레기를 버리고 아파트 안 도로를 따라 정문으로 내려갔다. 산꼭대기에 아파트가 있는 덕에 우린 늘 외출을 하지만 갈 곳을 잃는다. 이 길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려면.. 그런데 이렇게 들어가긴 뭔가 아쉽다.


“뭐 시원한 거 먹을래? 편의점 갈까?”

“그럴까?”

마치 자기는 괜찮은데 엄마를 위해 가준다는 뉘앙스로 딸이 말한다. 귀여운 내 새끼.

좁은 아파트 단지 안을 빙 돌아 아파트 입구로 내려오니 주차장 입구의 차단막이 올라가 있고 쿠팡 마크가 찍힌 택배 배송차가 서 있다.

덜덜덜 덜덜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짐차 끄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방학이면 가끔 하는 쿠팡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 때문인지 쿠팡 마크가 찍힌 택배 배송 트럭을 보면 왠지 맘이 쓰인다. 확실히 사람은 자신의 일이 되어봐야 그 맘을 이해하는 것 같다. 딸이 공황 장애를 겪지 않았다면 공황 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고 아들이 쿠팡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새벽길을 달리는 쿠팡 배송원이 짠해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딸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이 시간에 쿠팡은 배송을 하나 보네. 힘들겠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차도에는 간간히 차가 다니고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한적한 도로 옆 편의점의 불빛과 간간히 켜진 상점의 간판 불빛 탓에 어둡지는 않았다. 적당한 어둠과 적당한 소음. 시원한 밤공기와 더불어 한가로운 밤거리. 나는 늘 시작하는 새벽의 고요함보다 하루 끝인 밤의 적막함이 더 좋았다. 늘 이 정도의 여유로움과 이 정도의 어둠이었으면 좋겠다.



집 주변에 마트는 없어졌지만 편의점이 3군데나 있다는 것은 참 편리하다. 우리는 길을 건너야 하는, 할인카드가 있고 큰 편의점 대신 골목 안에 있는 작은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이 늘 먹던 블루 에이드가 없어 깔라만시 에이드를 샀다. 나는 편의점을 잘 이용하지도 않지만 편의점을 가게 돼도 먹고 싶은 것보단 1+1이나 2+1 하는 것을 고른다. 참 궁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딸 덕분에 늘 맛이 궁금했던 1200원짜리 깔라만시 에이드를 샀다. 그리고 2+1 행사 중인, 딸이 좋아하는 하이쥬가 눈에 보여 냉큼 집었다.

“이런 게 소확행이지.”

딸은 한 손엔 깔라만시 에이드를, 한 손엔 하이쥬 3개를 들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딸이 말했다.

“나는 딱 지금 이 분위기의 이 느낌의 골목이 좋아. 이 동네는 이런 게 좋단 말이지. 약간 시골스러움?”

그래, 우리 동네가 서울에서 가장 후지긴 했지. 그걸 이렇게 좋게 받아 생각해주다니 생각의 전환인가?? 늘 엉뚱한 매력을 뽐내는 딸. 조금만 둥글둥글하면 좋겠는데..


<나혼자산다 김형준편>을 본 아들이 흥분했다. 자기가 저런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데 아파트를 빠져나가 언덕을 오르는 쿠팡 택배 차량이 보였다. 아마 우리 아파트는 배달을 완료했나 보다. 사라져 가는 택배 차 뒤를 보며 딸이 말했다.

“이제 다른 골목들을 돌아다니며 배달을 또 시작하겠지? 불쌍하다. 남들은 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는데 저분들은 이제 힘든 하루가 시작이네.”






알라딘의 당일 배송, 쿠팡의 로켓 배송, 마켓 컬리의 샛별 배송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그 편리함에 감탄을 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오늘 주문해 오늘 받을 수 있는 택배 시스템은 너무 편리하고 좋다. 빠름 빠름을 외쳐 대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대한민국에서는 스피드가 곧 생명이라 굳이 급할 필요 없는 사람조차도 빠르게 뛰지 않으면 왠지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 늘 빠르게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빠름과 편리함 뒤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맘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밤에 주문한 물건을 다음날 아침에 받는 편리함을 위해 쿠팡 맨은 밤잠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니까’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걸까?



불현듯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어디쯤의 스페인 하숙 속 알베르게 마을이 생각났다. 마을 전체에 흐르던 평안함과 여유로움. 어쩌면 그 여유로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하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 속에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곳,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세상에서 제일 빠른 로켓 배송차의 뒷모습과 함께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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