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바꾼 일상
지난주 코로나 19로 인한 남편의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회사 생활 20년 만에 처음 해보는 재택근무였다. 주 5일 중 2일은 회사로 출근하고 3일은 집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출퇴근해야 하는 경우 자차나 택시를 이용하면 비용을 회사 경비로 처리해 준다고도 했다. 재택근무를 하려면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재택이 가능하다니 코로나 19가 다른 무엇보다 능력 있는(?) 기반 시설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딸이 트위터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엄마, 사람들이 이래서 노비도 대감집 노비를 해야 된다고 하대.” 아마 이 사태에도 재택근무를 하지 못하는 회사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자조 섞인 글을 본 모양이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아빠 회사가 대감집은 아닌데.. 코로나 19 덕분에 남편은 졸지에 대감집 노비(?) 신분이 되었다. ㅜㅜ
재택근무 전날.
“근데 나 어디서 일하지?”
“식탁에서 하면 돼지. 밥 먹을 때만 치우면 되지 않나?”
나는 주말에 가끔 남편이 회사 컴퓨터를 가져와 식탁에서 보던 것이 생각나 당연한 듯이 말을 했다. 아이들 책상뿐인 우리 집에서 나나 남편이 무언가를 하려면 식탁을 이용할 수뿐이 없다.
“그건 좀..”
남편이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늘 하던 것인데 갑자기 왜 그런가 싶었지만..
“그래? 그럼 아들 방 써.”
“아들 자는데 괜찮을까?”
“깨워서 안방에서 자라고 하면 돼지. 갠 깨우면 잘 일어나. 따님 깨우기가 힘들지. 그럼 몇 시에 알람을 맞추면 되는 거지? 9시에 컴퓨터 켜면 출근인 건가?”
“응. 알람 안 맞춰도 돼. 내가 일어날게. 당신은 더 자.”
나는 밤잠이 없고 남편은 아침잠이 없다. 주말이 되면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만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나 남편이 출근하는 동안에는 큰 의미가 없다. 본능과 상관없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자는 것이 나니까.
재택근무 첫날.
역시나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남편은 일찍 일어났다. 출근하지 않는 날은 일찍 잘도 일어나는 남편. 남편을 출근시키지 않아도 되는 나는 아침 8시 반 느지막이 일어나 아들방으로 갔다.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는 아들을 깨워 안방 침대로 옮기는 동안 남편은 아들 책상에 회사 컴퓨터를 설치하고 스피커를 연결하고 게임용 키보드를 장착했다. 9시. 방으로 들어가는 남편이 모닝커피를 부탁했다. 집에서는 마시지 않는 모닝커피였다. 네스프레소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려 남편에게 배달했다.
“당신은 더 자.”라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도 아침을 시작했다. 빼꼼히 열린 아들방에서 라디오 소리와 섞여 남편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게임용 키보드는 자판에 불이 들어오는 것 외에 자판을 칠 때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의 점심시간 즈음 일어난 아들이 남편의 키보드 소리를 듣고는 말했다.
“아빠 회사에서도 저거 쓰시나?”
“설마, 소리가 저렇게 요란한데 쓸 수 있을까? 근데 소리만 듣고 있으면 아빠 꼭 오락하는 거 같지 않냐?”
“ㅋㅋㅋ”
재택근무라고 하면 근무 시간에는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마치는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의 재택근무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는, 규칙적인 회사 생활의 연장이었다. 단지 매일 3시간씩 출퇴근해야 하는 거리가 1분으로 단축되었다는 것과 함께 밥 먹는 시간이 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이래서 식탁에서는 못한다고 했구나.
재택근무 2주 차.
어제 신문에서 코로나 19 사태 이후 중국에서는 이혼율이 급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하루 종일 부부가 붙어 있다 보니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같다는 글이었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가는 글이었다. 나 역시 남편의 재택근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걱정을 했었다. 코로나 19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면 가족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감정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24시간 함께라니. 재택근무가 신혼이라면 모를까 20년 차 부부와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택근무 2주 차, 우린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대학교 개강 연기, 초중고 개학 연기를 시작으로 남편의 재택근무까지 여태껏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는 우리. 늘 방학이 짧아 아쉬웠던 딸은 3주나 연기된 개학에 '살면서 학교가 가고 싶을 줄은 몰랐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루 3시간 아르바이트 때문에 나만의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위한 잠깐의 외출이 그리워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1시간 반 거리를 출근이 힘들어 회사가 집 근처였음 좋겠다던 남편도 재택근무를 답답해한다. 집돌이 아들도 심심하다는 말을 할 정도다.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진 요즘, 우리는 습관 같은 일상이 주는 편안함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