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사랑입니다
오후 12시
코로나 19로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는 우리는 우아하게는 브런치, 현실적으로는 아점을 먹었다. 알바 갈 때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분갈이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루틴이 사라진 일상은 오히려 늘어지고 무기력해진다. 커피만 마시고 청소기를 돌려야지 했는데 TV 앞에 앉은 내 궁둥이가 뭉그적 뭉그적. 딱히 재미있는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잠시만 봐야지 하던 것이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런.. 하루 첫끼를 먹었을 뿐인데 시간은 벌써 1시를 훌쩍 넘겨 2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애들아~~ 엄마 청소할 거야. 창문 열고 이불 개.”
침대 속에서 뒹굴던 아이들이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세탁기를 돌렸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간다며 아들은 나갈 준비를 했다. 늦은 아침은 이럴 때 제일 곤란하다. 밥을 먹고 나가기에는 너무 빠르고 안 먹고 나가려니 이따 배가 많이 고플 것 같고. 집에만 있다 보니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며 아들은 그냥 나갔다.
이제 남은 건 딸과 나. 혼자면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는데 아이들이 있으면 그래도 규칙이 생긴다. 이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밥 챙겨 먹기가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
딸의 학원 시간에 맞춰 오늘의 두 번째 식사를 준비했다. 딸 역시 학원 때문에 밥을 먹는 것이지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지금 먹지 않으면 학원에서 돌아올 10시 반까지 배가 너무 고프기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한다. 어제 먹고 싶다던 베이컨 떡말이를 만들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이야기해주면 고맙다. 그 음식이 만들기 쉬우면 더욱 고맙다. 근처 식재료 마트에서 사다 얼려둔 밀떡을 끓는 물에 한 번 삶은 후 반으로 잘라 4개씩 베이컨으로 감싸 예전 친정 엄마가 장사를 그만두시며 주셨던 꼬치에 꽂았다. 에어플라이어를 이용할까 하다 너무 바삭하게 되는 것 같아 그냥 프라이팬에 구웠다.
총 7 꼬치 중 5 꼬치는 딸이, 2 꼬치는 내가.. 배는 안 고팠지만 이상하게 아이들 간식은 맛있어 보인다. 자기가 한 음식은 맛이 없다던데 난 내가 하건 누가 하건 다 맛있다. 게다가 늘 엄마 먹을 것 챙기는 아이들 덕에 맛보기로 한두 개는 꼭 먹게 되니 입에서 먹을 것이 떠날 틈이 없다.
오후 6시
딸아이를 보내고 나니 오래간만에 집에 나 혼자 남았다. 오랜만이다. 학기 중에는 늘 이렇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두 달 넘게 아이들과(최근엔 남편까지) 집에서 복작대다 오래간만에 조용한 집에 혼자 있으려니 조금 낯설었다. 조용한 집이 주는 편안함을 잊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고독을 즐기는 데 아들에게 카톡이 왔다.
‘밥 안 먹고 감’
아.. 저녁 안 해도 된다 좋아했는데 밥을 해야 한다. 저녁 먹고 와도 되는데..
오후 8시
밥을 새로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입이 까탈스럽지 않은 아들은 주는 대로 잘 먹어줘서 늘 고맙다. 까탈스럽다 해도 12시에 밥을 먹은 아들의 두 번째 식사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반찬은 배고픔이다. 옛말에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된장찌개와 마늘햄, 명란젓갈, 총각김치와 김으로 간단한 밥상을 차렸다.
“엄마는?”
“엄마는 배불러. 아까 채원이 갈 때 같이 먹어서.”
“진짜 안 드세요? 이따 배고플 텐데.. “
분명 배는 안 고팠다. 하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아들 말대로 이따 분명히 배가 고플 것이고 늦게 먹는 밥은 분명 내 뱃살을 포동포동하게 만들 것이다. 40대 중반까진 그래도 굶으면 살이 빠진다는 착각이라도 들었었는데 지금은 굶어도 저울의 숫자는 바뀔 줄을 모른다. 심지어 먹지 않았는데도 숫자가 올라갈 때도 있다. 뭐 이런.. 나잇살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갓 지은 밥과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아들의 효심(?)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따 늦게 먹느니 차라리 지금 먹는 것이 낫다는 합리적인 이유까지 있었다. 못 이기는 척 밥숟가락을 들고 아들 옆에 앉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자.
오후 10시 15분
코로나 때문에 회사에 나가는 날은 차를 끌고 가는 남편이 야식과 함께 퇴근했다. 조금 있음 학원에서 돌아올 딸의 간식이 해결되었다는 기쁨과 망했다는 절망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살 좀 빼라면서도 늘 맛난 것을 사 오는 남편. 밖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면 늘 식구들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남편 덕분에 집순이인 나는 강남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불어나는 몸무게만 아니라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인데..
오후 10시 30분
학원에 갔던 딸이 돌아왔다. 배고픔을 대비에 먹고 갔지만 약간의 허기가 느껴질 시간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야식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야식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원래는 냉동 핫도그 하나 데워줄 생각이었는데 아빠 덕분에 반미로 제대로 식사를 했다. ‘나는 아까 밥을 먹었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라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맛나 보인다. 옆에서 반만 먹어보라는 남편의 꼬임도 한몫했다.
“그... 그... 럼 반만 잘라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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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분명 반만 먹으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몫의 분량 하나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배가 안 고팠는데.. 내 위는 블랙홀인가 보다.
결국 오늘도 난 아이들의 효심과 남편의 사랑으로 저울의 숫자가 바뀌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절대 난 배가 고파서 먹은 건 아니다. 그저 입이 심심했을 뿐. 음식이 사랑을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분명 우리는 넘치는 사랑을 주고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오늘도 사랑이 넘치는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