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정 부모님은 동안이셨다. 덕분에 나도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과거형에 주목!! ^^) 부모님의 열성 유전자(키 작고 뚱뚱하고 성격 지랄 맞은 ㅋ) 몽땅 내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딱 하나 우성인 유전자가 동안이었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이던 어느 해, 나보다 두 살 어린 고등학생 남동생과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계산을 하는데 계산원분이 우리를 보고 “오빠가 동생을 잘 챙기네.”라고 말해 동생이 몹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한동안 동생은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라고 계속 물어봤다. 누나가 그렇게 어려 보여가 아니라 자신이 늙어 보이냐고 묻던 동생. (자랑질 1)
가장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과 장을 보고 짐을 몽땅 들려는 아들에게 “그건 엄마가 들게.”라고 이야기한 순간 계산하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우리를 쳐다보시며 놀란 듯 “엄마예요? 난 누난 줄 알았네.” 하시는 거였다. 몇 만년만에 듣는 기분 좋은 말에 나는 입꼬리가 올라감을 숨길 수가 없었지만 아들은 한동안 충격으로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를 연발하고 다녔다.(자랑질 2)
두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내 동안은 어려 보여서 손해 볼 정도는 아니다. 딱 기분 좋을 정도의 동안? 상대방이 긴가민가 싶어 확인 차원에서 묻는 정도라 잠시 내 기분을 좋게 해 줄 뿐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다.
어릴 적부터 늘 나이보다 어리게 보인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처음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몹시 당황스러웠었다. “저기요. 아줌마..” “아줌마 이거 떨어뜨리셨어요.””아줌마, OO이가요.” 결혼을 한 후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해졌고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름을 부르는 일이 줄어드니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낯설어진 만큼 갑자기 생긴 ‘OO엄마’, ‘아줌마’라는 호칭도 어색했다. 특히 ‘아줌마’라는 호칭은 꽤 오래 적응되지 않았다. ‘누구더러 아줌마라는 거야!!’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자연스레 내 입에서 먼저 ‘아줌마’라는 호칭이 나온다. ‘아줌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요즘 문득 난 왜 ‘아줌마’라는 호칭이 불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학생’ 같은 호칭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다.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에 따르면 본디 ‘아줌마’와 ‘아주머니’는 ‘고모’나 ‘이모’를 뜻하는 평칭의 호칭어였으나 현재는 어느 정도 나이 든 일반 여성을 부르는 데 쓸 수 있는 대표적인 호칭어라고 한다. 그런데 ‘아줌마’는 ‘아주머니’보다 등급이 떨어지는 말이라니.. 우리말의 품격이 떨어져 ‘아주머니’ 보다 ‘아줌마’라는 말을 더 쉽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정확히 그 의미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라면 ‘옆집 아줌마’와 ‘옆집 아주머니’의 뉘앙스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줌마’라는 호칭 속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내가 등급(?)이 떨어지는 중년 여성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반응은 아니었을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과는 달리 육아와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로 살아온 나에게 어쩌면 '아줌마'라는 호칭은 '나는 무능력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결국은 또 망할 놈의 자존감 문제. 그렇다고 ‘아주머니’로 불리고 싶지도 않다. 등급(?)이 높아도 등급(?)이 낮아도 그 단어 속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마냥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줌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져 ‘아줌마’와 ‘아주머니’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그저 ‘아줌마’는 평서체, ‘아주머니’는 경어체 정도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만일 ‘아줌마’라는 호칭을 대신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언제든 기꺼이 ‘아줌마’라는 호칭을 벗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