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불

by 김성민


거리에 눈이불이 깔렸다. 눈으로만 보는 눈은 포근하다. 눈이불에 덮이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눈이불이 나의 부글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모두 덮어줄 것 같아서. 절기로 따지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 지나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이 왔건만, 기온이 오르내리며 아직 가을인 듯 겨울인듯 머뭇거린 느낌이었는데 첫눈이 폭설로 내리면서 본격적인 겨울이 들이닥친 느낌이다.


문득 초가을 무렵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다 하게 된 강연을 앞두고 긴장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괜찮아. 이불킥 해도. 또 다른 이불킥으로 덮으면 되거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 것처럼. 밤마다 무수한 이불킥을 해서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이.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새로운 일로 덮으면 된다는 친구의 '이불킥론'이 신선했다. 학생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강의를 수정 보완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 새로움이 익숙함이 될 때까지 강의 실험을 반복한다. 실험 도중에 발생하는 뜻밖의 일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날이 이불킥을 멈추는 날이 될까?


친구의 예언대로 나의 강연은 이불킥으로 점철된 만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나는 이불 속 뿐 아니라 이불 밖에서도 나의 강연을 복기하며 아쉬운 점을 떠올렸다. 마치 무의지적 기억처럼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을 이제 와서 글로 쓸 수는 없다. 나의 이불킥들이 날려버렸으니까. 친구의 조언대로 또 다른 이불킥으로 덮어버렸으니까.


시간은 어쩌면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원의 형태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여기서 과거를 떠올리고 나의 미래를 앞당겨서 상상하기도 하니까. 내 몸은 현재에 있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도 하니까. 이불킥을 한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일로 애태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나는 이불킥을 할 때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동작에 주목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상승일지 하락일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불킥 할 일을 만들어 낼만큼 내가 움직였다는 뜻이니까.


눈이불로 덮인 세상은 마치 나에게 나직하게 묻는 것 같다. 올 한해가 어땠냐고. 나는 아직 대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한 달이'나' 남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해본다. 그 사이 나는 또 다른 이불킥을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의 이불속 발길질이 조금 더 능숙하고 자연스럽기를 바란다. 내가 진짜 두려운 것은 이불킥을 멈추는 것이다. 어떤 시도나 어떤 실험을 멈춘다는 뜻이니까. 눈이불은 모든 수치와 수모를 덮어줄 것만 같다. 불안과 두려움이 눈이불 속에서 잠들면 좋겠다. 하얗고 깨끗한 마음은 완전무결이 아니라 무수한 결점을 끌어안는 것이라고. 11월에서 12월로 가는 길목에 펼쳐진 눈이불이 그렇게 나에게 가만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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