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간의 기록 Dec 10. 2020

정말 알 수 없는 일

『안나 카레니나』3


지난해 결혼 한 동생 커플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혼인신고를 하고 구청에 마련된 ‘we just got married’ 라고 마련된 포토존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예뻤다. 확고한 믿음과 사랑의 모습은 이런 것이에요. 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동생의 결혼을 비롯해서 나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결혼이란 무엇인가를 자꾸만 묻게 한다. 아마도 그런 마음의 바탕이 『안나 카레니나』로 이끌었을 테고 작품을 읽으면서 더더욱 묻게 된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결혼은 어떤 모습인가. 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결혼 전에 했던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막연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지했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나서야 알았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에 나오는 문장에서 사랑을 결혼으로 바꿔 말하면 그러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p27,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정직한, 너무나도 정직한 레빈      



레빈은 결혼만이 이상적인 삶을 완성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처럼. 타이밍이 어긋났던 레빈과 키티는 각자 아픔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재회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소중함과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결혼을 앞둔 레빈은 이 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느낀다.      



레빈은 여전히 무아경의 상태에 있었다. (...) 나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내 행복은 당신네가 무슨 짓을 해도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니까요. (394p,『 안나 카레니나 2』 )        


  

무아경에 있던 레빈은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믿기지 않아서 볼을 꼬집어본다. 꼬집어도 너무 세게 꼬집어 결국, ‘키티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라는 의심을 하고 만다. 키티에게 달려가 아직 늦지 않았으니 , 아직 자유의 몸이니 지금이라도 결혼을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한다. 자신은 아무래도 자격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나 같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하느님, 나는 어떡하면 좋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했담!’ 그는 외쳤다. (410p)


 

어쩌면 완벽한 확신보다 의심을 거친 확신이 더 믿을만한 것일까. 아무런 의심 없이 행복을 받아들이기에는 레빈은 너무나 정직했다. 레빈은 여러 번 돌다리를 두드린다. 과연 내가 행복의 징검다리를 건너도 될까. 결혼을 그만두어도 좋다는 놀라운 제안에 앞서 레빈은 이미 키티를 한 번 충격에 빠뜨리게 한 전력이 있다.   


   

레빈도 전혀 마음의 갈등 없이 자신의 일기를 그녀에게 건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와 그녀 사이에 비밀은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어찌되었든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았다. (338p)     



레빈이 건넨 일기장에는 ‘지기가 순결하지 않다는 것과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키티는 일기를 보고 괴로워하고 눈이 부어오르도록 울지만 레빈에게 ‘용서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레빈은 안도하며 자신의 행복에 확신을 갖는다. 불필요할 정도로 정직한 레빈의 행동은 톨스토이와 닮았다. (레빈(levin)은 톨스토이(lev)의 분신이기에.) 톨스토이 역시 아내 소피야에게 자신의 모든 과거가 적힌 일기를 보여줬다.


      

톨스토이는 1862년에 열여섯 살 어린 소피야와 결혼했다. 합법적인 성생활의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그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아내에게 자신의 방탕한 삶을 낱낱이 기록한 일기를 보여준다. (...) 새색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남편의 일기를 읽고 극심한 추격 상태에 빠져든다. ‘생전 처음 사랑에 빠진’ 상대가 집안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함한다. (47p,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톨스토이와 레빈이 다른 점이 있다면 레빈은 결혼 전에 일기를 보여줬고 톨스토이는 결혼 후에 보여줬다. 소피야가 톨스토이의 일기를 결혼 전에 보았다면 도망갔을까? 아직 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일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레빈이 톨스토이보다 덜 잔인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레빈은 여러 번의 확신과 의심 사이를 오간 끝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놀란 듯한 수줍은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그것을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이제 일심 일심동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433p)      


레빈이 얻은 행복에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결혼은 마땅히 예상대로 행복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레빈은 결혼한 지 석 달째가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한 걸음마다 예전에 했던 공상에 대한 환멸과 뜻밖의 새로운 매혹을 찾아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매 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74p)


레빈은 경악한다. 남의 결혼생활을 보며 비웃었던 자질구레한 걱정과 입씨름이 본인의 것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생활이 그동안 경멸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혼 기간 동안 그들은 두 사람이 서로 묶여 있는 쇠사슬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긴장을 줄곧 생생하게 느꼈다. 요컨대 세상에 전해오고 있는 말을 좇아 레빈이 아주 많은 것을 기대했던 그 밀월, 즉 결혼 후의 일 개월은 꿀 같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의 기억에 한평생을 통해 가장 괴롭고 굴욕스러운 시기로 남았던 것이다. (480p)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가장 괴롭고 굴욕스런 시기는 천천히 잊혀지고 안정기에 접어든다. 결혼후 석달이 고비였다. 석달 째, ‘그들의 생활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키티는 레빈의 형이 죽음에 가까워지자 레빈과 함께 형을 찾아가  정성껏 돌본다. 레빈의 우려와는 달리 키티의 능숙한 돌봄 덕분에 형이 잠시나마 회복했던 장면은 레빈과 키티가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적응하며 결혼생활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첫 신호였다.




 




레빈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돌리 역시 레빈이 경험한 그 기분,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사람이다.


 

돌리는 키티와 레빈이 결혼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자기의 결혼식 때로 돌아가 스테판 아르카디이치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현재의 일은 모두 다 잊혀버리고 그저 자신의 순진한 사랑만이 생각났다.



(...) 그녀도 그때엔 지금의 키티와 가티 오렌지꽃과 베일에 싸인 순결한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혼자서 중얼댔다. (429p)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한 가정, 불행한 가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