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좋은 계절

by 김성민


헤븐님에게



지난 주말에는 봄비가 내렸어요. 눈부신 봄빛이 차분해지는 날이었는데 마음만큼은 들뜨는 일이 있었지요. 오랜만에 대학 동기를 만났거든요. 5년 만이었어요. 그동안 1년에 한 번 생일 축하 문자만 주고받을 정도로 드문드문 연락했는데 만나자, 한 마디에 우리는 더 미루지 않고 약속을 잡았어요. 어쩌면 인사로 하는 빈 말로 남겨둘 수도 있었을 텐데 오랜 공백을 채우고 싶었나 봐요. 같은 마음이라서 반가웠죠. 만나서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쏟아냈어요. 정말 쏟아냈다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어요. 펜데믹 상황으로 만남이 드물어진 요즘이라서 그런지 상쾌하기까지 했어요. 마치 오래 묵은 것들이 방출된 것처럼요.



그날 만난 대학 동기를 나는 언니라고 불러요. 한 살이 많거든요. 나도 동기들에게 언니라고 불렸어요.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시험을 다시 봐서 들어가서요. 삼수였어요. 이미 다른 곳에서 신입생으로 지냈고 다시 신입생이 되니, 뭐랄까... 헌 신입생? 제 때 들어온 동기들과 어울리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 있었죠. 여대라서 개인주의가 더 강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아니면 학과 특성일 수도 있고요. 정확한 학과 명칭은 언론 홍보 영상 학부인데 과거엔 신문방송학과라고 불린 곳이에요. 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과라서 복수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은근한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다들 나 잘났다, 하면서 서로 더 잘나 보이려는 경쟁심까지 있었으니 분위기가 전투적이었죠. 교수님들도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일한 경력을 지닌 분들이었고 학문보다는 실용 기술을 강조하는 곳이었어요. 기사 쓰기, 영상 만들기, 이런 수업을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학문을 배우기보다 실용 기술을 익힌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때는 그게 공부라고 생각했고요.



아무튼, 3월의 어느 날, 전공수업 시간에 언니는 내 옆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애써 아닌 척하려고 해도 이미 출발이 늦었다는 조바심을 온몸으로 풍기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언니와 나는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걸 느낌으로 단박에 알아챘겠지요? 그렇게 서로 인사를 튼 날, 그날이 언니 생일이었던 거예요. 헤븐님은 처음 만난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 적이 있나요? 그것도 단 둘이서.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요. 오래갈 인연이라는 느낌이요. 아마 그런 느낌이 있어서 서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않아도 공백과 침묵을 이해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마치 다정한 무관심처럼요.



5년 만에 얼굴을 보아서 좋았지만 이토록 반가운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마도 그 시절의 나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 가능성이 열려있고 그 가능성을 향해 활발히 정열적으로 움직이던 내가 있는 그 시절 말이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려는 건 아니에요. 과거는 윤색되기 마련이라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건 현재에게 불리한 것 같아요. 그때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 지금 여기 있고 지금 여기서 결코 다시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때 있어요. 아마도 그 시절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건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 덕분이겠지요.



헤븐님과도 한 시절을 공유하고 있어요. 몇 년 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에세이 모임에서 처음 만났었죠? 헤븐님의 글을 읽으면서 댓글을 달고 서로의 블로그를 오가며 대화를 나누고요. 이미 글을 통해 대화를 나누어서 실제로 만났을 때 첫 만남이지만 처음 같지 않았어요. 글로 나눈 생각과 마음이 서로에 대한 든든한 배경지식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단 한 번의 만남이지만 여운이 길었답니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는데 헤븐님 글에서 흘러넘친다는 느낌을 받아요. 솔직함이 진심이라면 순도 백 프로의 진심을 담은 글. 저는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솔직함이요. 직접적이기보다 우회하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는 어려운 글이에요. 누가 제 글 보고 그랬잖아요. 화장이 지워질까 봐 울지 못하는 느낌이라고요. 아마도 저는 울고 싶지만 울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지도 몰라요. 축축 젖은 글이 마를 때까지 저는 묵혀두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라앉을 건 앉고 남아서 떠오른 것을 쓰는 것이지요.



어떤 이야기는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려요. 아마 묵혀두는 과정은 적당한 언어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일 거예요. 외롭다, 화가 난다, 슬프다, 라는 단순한 표현은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이해가 되는지요. 에밀리 파인이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책 『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을 읽었어요.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가 쓴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담은 첫 에세이예요. 나오자마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해요. 상도 많이 받고.


저자는 그동안 ‘말하지 못한 모든 것’을 쓰고 있어요. 알코올 중독자 아빠에 대해서, 아기를 몹시 원하지만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에 대해서. 이혼이 헌법으로 금지되어 있던 시절, 갈라선 부모 밑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서. 십 대 시절의 거침없던 방황에 대해서. 저자는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어두운 시간에 대해 쓰는 걸까요? 덮어두어도 좋을 이야기를요. 여기 이런 문장이 있어요.



글쓰기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고통으로부터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거기에서 파생된 감정들이 있어요. 이런 일들은 계속 그대로 남아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거나 아니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거나. 저자는 자신이 몰두하는 감정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면서 써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과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면서요. 두렵지만 필요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런 일들이 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이니까. 용기를 갖고 언어화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요.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말하면 두려움 없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가 아니겠고요. 이 편지를 시작하는 데도 두려움이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어서. 하지만 그 알 수 없음이 매력이기도 하지요. 한번 맡겨보려 해요. 편지가 만들어낼 흐름에.



시작하기 좋은 계절, 봄이에요.

끝이라고 생각할 때 새로운 시작이 있던가요 ?

흐드러진 봄이 재촉하는 것 같아요.

봄날이 가기 전에 어서 부지런히 봄을 만나라고요.

만개한 벚꽃이 눈앞에 있어요.






벚꽃 사진을 힘껏 찍은 날, 첫 편지를 띄우며

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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