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생애

by 김성민



어느덧 유월, 한 해의 반이 지나고 있어요.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중간점검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헤븐님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편지를 나누는 요즘, 저는 마치 결혼에 대한 중간점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지난 편지에서 결혼식에 다녀온다고 했었지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어요. 코로나 시국이라서 피로연이나 식사를 생략한 최소 시간으로 진행된 결혼식이었지요. 하객들도 거리두기 해서 앉았고요.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단체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런데 헤븐님은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랑과 신부에게는 결혼식의 모든 순간이 하이라이트이겠지만 필요한 핵심만 있는 예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두 사람의 언약이었어요. 네, 바로 혼인서약. 신랑과 신부가 번갈아 가면서 서약을 읽는 목소리가 천장 높은 식장에 울려 퍼졌어요.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선언하는 결혼에 대한 맹세. 간소화된 결혼식은 결혼의 핵심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어요. 결혼은 약속이다.





영어로 결혼하다를 ‘tie the knot’라고 한 대요. 결혼으로 두 사람은 언약이라는 매듭(knot)으로 묶이는(tie)는 걸 표현한 것이겠지요? 요즘 알게 된 『결혼하면 사랑일까』라는 책이 있어요. 저자인 리처드 테일러는 덕 윤리를 옹호한 미국 철학자인데요, 여러 형태의 결혼을 살피며 (가령, 시민권을 얻기 위한 결혼 등) 진정한 혼인관계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요. ‘엄숙한 결혼식도 아니고 법적 서류제출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결혼일까?’ 하고 말이죠. 대답은 ‘변함없는 사랑이 두 사람을 진정한 부부로 맺어주는 것’ 그러니까 ‘변함없는 사랑’이 법보다 위에 있으며 지속적인 사랑과 헌신 여부가 결혼의 생명력을 결정한다고 해요. 즉 죽은 결혼이냐 살아있는 결혼이냐는 ‘사랑’이라는 심장에 달린 것이라고요.



새롭지 않지만 결혼에 관한 가장 기본 정의를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결혼, 죽은 결혼 혹은 병든 결혼, 건강한 결혼 등 다양한 결혼의 모습이 있겠지요. 인생에 불행과 행복, 슬픔과 기쁨이 혼재하듯 결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로병사가 결혼에도 있다, 어떤가요? 저는 결혼의 생애라고 부르고 싶어요. 모든 사람의 삶이 제각각이듯 결혼의 생애도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고요. 사랑으로 결혼이 탄생하고 결혼은 부부가 된 두 사람이 키우는 아이 같아요. 이제 저의 결혼은 십삼 연차에 이르렀으니 질풍노도의 시기를 시작하는 청소년기가 아닐까 싶어요. 삶에 반항하는 십 대처럼 결혼이 발생시킨 여러 의문들과 싸우고 싶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결혼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



종종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이 갑자기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충분한 준비 없이 어느 날 덜컥. 처음에는 저만 느끼는 혼란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비슷한 혼란을 느끼고 갈등을 겪으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어요. 복잡하게 얽힌 부부간 문제를 공유하는 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때로는 가까운 사람과의 수다보다 완전한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죠. 인터넷 카페 익명 게시판에 온갖 고민이 범람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하지만 일시적인 해소일뿐 비슷한 패턴으로 문제는 반복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부부 상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의지가 아니었지만 결혼은 의지가 작용한 결과이죠. 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 순진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미혼 남녀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연애와 결혼 자체이지 결혼 그 이후가 되기는 힘들잖아요? 그건 마치 수험생에게 대학 입시라는 문제가 지나치게 커서 대학 이후는 잘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해요. 10대가 30대 이후의 삶에 대해 막연한 것처럼, 결혼 이후의 삶에 대책 없이 막연했어요.



‘닥터 러브’라고 불리는 알랭드 보통은 이러한 점을 정확히 간파한 것 같아요.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랑이 변함없다면 결혼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요? 사랑 자체는 지속되는 힘이 없어서,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 사실은 바로 결혼 제도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결혼은 사랑의 종착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 아닌가요? 책의 원제는 ‘사랑의 여정 The Course of Love ’이지만 결혼의 여정이라고 보아도 무방해요. 결혼이 어떻게 시작되고 부부는 얼마나 황홀하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는지 말하고 있어요. ‘결혼을 하고 돈 때문에 걱정을 하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이 진짜 러브스토리라고요.



알랭드 보통은 결혼을 이렇게 정의해요.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보통의 정의에서 냉소적인 위트가 느껴져요. 결혼이 성스러운 서약이라는 정의와 얼마나 대비가 되나요? 결혼식장에 선 신랑과 신부는 서약이 갖는 무게를 알고 있었을까요? 우스갯말로, 모르니까 결혼할 수 있다고 하죠. 결혼이 도박이라면 약속을 충실히 이행해도 예상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상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결과는 나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 인생 전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요.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에 나오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서로에 대해 완전히 다른 기대와 환상을 품어요. 그들은 성장과정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지요. ‘그녀는 몰입의 능력을 가진 반면, 그는 온종일 권태와 성적 자극이라는 어스름 속에서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럼에도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첫눈에 반한 사랑을 이어가 결혼에 이르러요. 두 사람이 지닌 환상의 비늘이 걷히는 순간은 신혼여행 첫날.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와 결합하는 날만을 학수고대했는데 플로렌스에게는 가장 두려운 날이었어요. 서로 다른 이해를 솔직히 드러내고 대화할 수 있었다면 6시간 만에 결혼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 그들은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고, ‘그 시절은 성문제를 화제로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어요.



순전한 무지는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밝혀지거나 알 수 없는 가장 내밀한 곳에 있었어요. 서로의 욕구에 대한 무지가 결혼을 파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요.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그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에드워드는 플로렌스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겨요. 입 밖으로 꺼내서 얘기하기에는 수치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침묵하고 말지요. 그들의 신혼 첫날은 돌이킬 수 없는 치욕스러운 순간이 되어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되어요. 그렇게 서로를 잃어버리지요. 이렇듯 극적인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사랑 말고 또 있을까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와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알랭드 보통 역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한 커플을 보여주며 결혼의 여정이 어떻게 우여곡절을 겪는지 말해요. 그들의 결혼은 16년간 이어지죠. ‘결혼이 단지 그 이수과정에 등록한 사람에게만 중요한 수업을 해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준비는 예식에 선행하기보다 대개 10~20년 후에 갖춰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까 결혼 수업이란 결혼 전이 아니라 결혼 후에 가능하다는 말. 아, 얼마나 냉혹한 수업인가요?! 수업이 곧 실전이고 실전에서 잘못하면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길 수 있으니 말이에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도 결혼을 과정으로 이해했다면 그토록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채 단호하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서로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서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정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달라졌을까요?



물론 어느 결혼에 대해서도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결혼 수업에서 종종 낙제하는 기분이 들지만, 수업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배움은 계속되리라 믿어요. 수많은 문학을 비롯한 여러 영역이 남긴 결혼에 관한 책을 보면 결혼은 분명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드는거 있죠.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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