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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Apr 27. 2024

월요일의 그녀에게_임경선

직업 현장과 일상에서 써먹을 유용한 정보가 재밌기까지!

진작에 읽으려고 찜해놨던 책. 


몇 개월 전에 읽으려고 빌렸다가 앞부분만 조금 읽고 반납했었다. 몇 달 전부터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모아놓고 있다. <월요일의 그녀에게>는 그중에서도 빨리 읽고 싶은 책이었다. 임경선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의 에세이는 거의 다 보았고 안 읽은 것은 찜해놓았다. 


어떤 에세이는 너무 가벼워서 '이런 책은 나도 내겠다'싶은 것이 있다(누군가 내 책을 보고 그렇게 말할 듯. <엄마는 개인주의자>라는 책을 아시는지......). '세상은 아름다워'같은 말만 하거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훈계하거나 잘난척하는 책들도 많은데 임경선작가 책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세상은 아름답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책도 사실 다 재밌고 얻어갈 것들이 많다. 그런데도 읽으면서 '알았어. 알았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는 '너무 적확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글로 딱 맞게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뻔하지 않아서 좋다. 


이번 책은 저자가 선배언니로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을 아주 솔직하고도 현실적으로 들려준다. 상사에게는 일단 잘 보여야 하고, 정의감이나 소영웅주의에 빠지는 것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사나 부하직원과의 사이에서 감정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실용적 정보와 실체적 진실이 하도 많아서 읽으면서 밑줄을 상당히 많이 그었다. 그만큼 뜨끔하면서도 새겨놓고 싶은 말들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 눈에는 젊은 사람들이 평범한 것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위태로워 보인다....... 뭔가 자신이 새롭게 시도한 행동 때문에 지금보다 상태가 나빠지지 않을까 불안해서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유지를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20대에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경험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본 경험이 있어야 30대에 할 수 있는 일의 용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견딜 수 있을 만큼 견디자....... 하지만 변화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팀장이 퇴사하고 새 팀장이 와서 팀의 역학구도가 바뀔 수도 있고 팀장 공백 시 과장의 전권 하에 팀이 운영될 수도 있다. 혹은 K대리가 팀장에게 하루아침에 신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회사에서의 상황은 변할 수 있으니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자학하지 말기를.


원래 질투라는 것도 비슷한 직급이나 조건을 가졌을 때 생기는 법이다. 저 멀리 미국에 사는 갑부들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한 동네 사는 대학동창이 아파트를 먼저 사서 이사해 나가면 배가 아픈 법이다. 그들이 잘 나가는 동료들 흠잡을 동안 그들 사이의 간격은 더 확연히 벌어지게 되고 어느덧 당신은 더 이상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먼저 승진하게 되더라도 뒷말이 나올 수 없다. 그들은 이제 당신을 욕하기는커녕 남을 지시할 수 있는 입장이 된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는 게 아니라 잘하거나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 고른 일을 평생 직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일부 직업에만 국한되는 게 현실이고, 대부분 첫 단추는 잘못 끼운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노하우가 필요할 듯싶다....... 둔감하고 조금은 뻔뻔스러운 것이, 소심하게 신경 쓰기보다 대범하게 사는 것이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비책일 수 있다. 


후임자가 좋은 성격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업무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고 전임 팀장이 뻔뻔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오만할 정도로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밑줄 그은 부분에서도 골라 쓰는 건데 이러다 책 내용을 다 옮기게 될 것 같아 이만 줄인다. 


어떤 책이든 읽다 보면 나의 모습과 비교해 보게 된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나는 전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나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나? 나의 가치를 일로서 실현하고 있나? 나는 일이 조금만 어려워 보여도 두려워서 내빼지는 않았나? 직장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나?(학부모, 교감, 교장, 동료교사, 학생들에게까지)


나는 열심히 일했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쳤고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준비하고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나를 바라볼 때는 더욱 의지가 솟았다. 반면, 수업하는 게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었고 교재를 연구하는 선생님도 아니었다. 전직을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막상 나가서 할 일도 없고 자신도 없어서 눌러앉아 있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열정은 남아있다. 가르치는 일 외에 학교 업무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인정을 좀 받았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아니다. 맡은 일만 겨우 하고 있다. 나의 가치 측면에서는 일로서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다. 아무리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어도 교사는 분명히 영향력이 있다. 교사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학부모에게도 나름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시에는 정당한 근거를 갖춰 논리적으로 따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교감, 교장 앞에서 괜히 그런 말을 했다 싶은 것들이 있다. 내 권리를 주장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제대로 한 마디도 못하고 넘어간 적은 더 많다. 그때는 비굴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 보니 유연하게 상황을 넘긴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도 있다. 감정이 이성과 논리를 지나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상황은 널렸다. 


일이 조금만 어려워 보이면 두려워서 내뺀 적은 많이 있다. 어차피 공무원은 일 많이 하고 잘한다고 연봉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할 거 아니면 일 많이 해봤자 나만 지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대체로 그렇게 보고 있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도 든다. 아무리 연공서열에 답답한 조직이라도 그 안에서 분명 나의 가치를 실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같다. 교직 내에서 행정업무나 승진을 위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떤 길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 길이 무엇이든 새로운 길을 만들면 될 일이었고 이미 만들어서 그 길로 신나게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주변에 자신의 교직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분들이 많다. 교육 전반, 상담, 전공과목을 살려 책을 낸다. 그것을 기반 삼아 온, 온프라인 연수원에서 강사로도 활약한다. 나는 애 키워야 한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다라고 핑계만 대면서 내 직업의 특수성을 살려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의지조차 가지지 못했다. 


실제 내 주변 및 SNS에서 보는 잘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본다. 다행이면서도 신기한 것이 내 눈에 이제는 그렇게 잘난 사람이 없어 보인다. 매일 바쁘게 출퇴근을 반복해서 그런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있어서 그런지 다른 업계의 연봉 높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생각이 요즘은 잘 들지 않는다. 어쩌면 체력이 떨어져서, 나이가 들면서 욕망이 많이 사라지고 체념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내가 이제야 좀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이랄까 이런 것을 찾은 것 같다. 요즘 나는 발령받은 지 17년 만에(휴직을 오래 하긴 했지만), 교직은 분명히 보람과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책에서는, 여기저기 인터뷰하러 다니고 유명하고 잘나고 멋지고 세련된 여성들처럼 될 필요도 없고 될 수도 없다고 했다. 이제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는 못났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들처럼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우의 신포도식 위로가 아니라 격한 공감과 동의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분명히 나의 성향과 가치가 흘러나가 상대에게 전해진다. 하다못해 몇 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물티슈를 반으로 찢어 나눠쓰자고 할 때, 남녀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른 적절한 언어를 사용할 때, 몇 시간 동안 앉아 활동한 책상과 의자는 반듯하게 정리하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할 때, 점심 급식을 남기면 왜 내가 손해를 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등을 일상에서 말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잔소리일지 모르지만(써놓고 보니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지만) 반복과 주입은 그 효과가 확실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하지 않던 일을 하면서 무엇이든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거기서 의외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 주식이 잘 나갈 때 우습게 봤던 교사의 월급, 글로벌기업에서 일하는 잘 나가는 직업여성들을 보면서 시시하게 생각했던 초등학교 교사의 일이 요즘은 조금 재밌다고 생각한다. 교사도 직장인이고 직업인이고 생활인이기에 작가가 월요일의 그녀들에게 전하는 따끔하면서도 시원한 조언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이렇게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 월, 화, 수, 목, 금요일에 일할 곳이 있어 감사하다. 


저자의 말처럼 '남들과 똑같은 식으로 잘난 필요도, 남들과 똑같은 식으로 평범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냥 내 길을 열심히 가면 된다. 오늘이 토요일인데 돌아오는 월요일에도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씩씩하게 출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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