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방학 어린이 책 읽기 프로젝트 5
우리 반 아이 두 명이 추천해 준 책. 우리 반 J가 '이 책 너무 재밌다'고 두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들은 D가 이 책을 읽고 또 재밌다고 했다. J는 많이 뛰고 까불고 수업시간에도 장난치는 아이다. D도 잘 까불고 말 엄청 많은 아이다. 아, 그런데 이런 게 너네 취향이었구나?! 귀엽다. 둘 다 까불이들이지만 책은 열심히 읽는다. 또 예의도 바르다. 그래서 까불어도 밉지 않은 녀석들이다. 그 둘이 재밌다고 한 책이라 궁금했다. 무슨 내용일까?
나루라는 6학년 수영선수 아이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 여정에서 라이벌 김초희를 만나고 좋아하는 남자아이 태양이를 만난다. 나루는 수영을 무척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열정과 의욕이 꽉 차고 넘치는 아이다. 그것이 과했는지 뭔가 조금씩 삐걱거린다. 라이벌 김초희는 너무 잘해서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아 질투가 난다. 열심히 하면 무슨 소용인가.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는 것을. 나루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초희를 따라잡을 수 없을까 봐 초조해진다. 그러니 시합이나 연습에서 허둥지둥하게 된다.
어린이 책을 읽으면서(이제 겨우 몇 권 읽었지만) 느끼는 것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결국 어른이 썼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을 돌이켜보면 그런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성숙하고 조금 느긋해질 수도 있겠지만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남보다 잘나고 싶고 결과와 성과에 집착하고 과정이 힘들고 지루하니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나도 꽤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완벽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면서도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남들에게 번듯하게 보일 수 없다면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조차 미루고 한없이 게을렀었다. 지금은 되든 안 되든 일단 시작한다. 조금씩 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을 알기에 예전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안 되면 말지 뭐, 언제 내가 뭐 다 잘했어?'라는 마음으로 시도해 보고 과정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일이 더 재밌어지고 더 잘하고 싶어 진다. 내가 세운 그날의 목표와 과정에 몰입하면 마음도 편하고 결과도 잘 나오는 것 같다.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그렇다. 내가 뭐 글을 얼마나 잘 쓰겠어? 잘 쓰려고 하는 것보다 책 읽고 기록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그냥 써! 못 쓰면 어때? 누가 뭐라고 하나? 뭐라고 하면 또 어때? 이렇게 말이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인가 기말고사 때다. 보통은 시험을 앞두고 안달복달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내가 그때는 웬일인지 그냥 편하게 준비했다. 남들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몇 시간 공부하는 것이 지겹지 않고 시간도 금방 갔다. 그때 처음으로 전교 10등 안에 들어봤다. 그 후로 아주 오랫동안 지지부진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내가 남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면, 과정을 즐긴다면, 결과도 좋은 거구나.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구나.
그런데 이게 쉽나. 어렵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루언니 버들이다. 버들이가 하는 말이 있다. "있잖아, 나루야. 나는 진짜 옛날에는 내가 국가대표 할 줄 알았다. 근데 중학교 가니까 이게 아닌데 싶더라고. 너도 알지? 나 평영 못하는 거. 배울 때 엄청 고생했는데. 지금도 느려. 근데 그런 애들 있잖아. 똑같이 배웠는데 훨씬 빨리 몸에 붙는 애들. 체중에는 그런 애들만 모여 있어. 걔네들이 게으르기라도 하면 어떻게 좀 해보겠는데 또 죽어라 연습한다? 그럼 난 당할 재간이 없더라고." 183쪽.
우리 집 첫째가 떠올랐다. 예중에서 발레를 한다. 발레를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았으니 거기서 우리 아이는 하위권에 있다(미안하다 첫째야). 그래도 첫째 녀석은 늦어도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 머리하고 스스로 밥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걸어서 전철역까지 가고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한다. 현재 방학인데도 매일 그렇게 한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래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아이가 대견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매일 해야 할 일을 한다. 예체능, 특히 무용의 세계에서는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쟁이 심한 곳이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과정을 밟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도 배운다. 물론 잔소리는 좀 하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루와 태양이, 김초희가 멋있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그 힘든 훈련을 다 해내고 시합을 치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아이들이다. 이렇게 또 교훈을 얻어간다. 아, 이래서 그 녀석들이 재밌다고 했구나!
나루는 줄넘기를 시작했다. 왜 하는지 알 수 없어도 우선 한다. 그게 나루의 운동에 대한 마음가짐이었다. 50쪽 (이건 김연아 오마주인가?!)
저녁 바람이 두터워졌다. 달은 매일 조금씩 변했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인 것 같아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마다 조금이나마 위치를 옮겨 갔다. 모양도 어느새 초승당에서 상현달, ㄱ리고 보름달로 바뀌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하고 수업 듣고 또 수영하는 똑같은 하루하루에 지쳐 있던 나루에게 눈앞에서 무언가가 확실히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조금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나루가 눈치재미 못할 뿐,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을 것이다. 102~3쪽.
나루는 이날 초희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경기야말로, 어떻게 졌는지가 중요한 시합이었다. 그런 시합이 있다는 걸 이제는 나루도 알았다. 224쪽.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루는 아무리 과정이 훌륭한들 결과가 형편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나루도 알았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나루 손으로, 나루의 두 팔과 다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분함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