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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Aug 11. 2024

80일간의 세계일주

2024 여름방학 어린이 책 읽기 프로젝트 8

  3학년 사회 교과서 교통과 통신의 발달 단원 도입 부분에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인용된다. 포그 씨가 세계일주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유명한 책이고 영화도 나왔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아나? 싶었었는데 마침 권장도서에 있어서 읽어보았다. 




  영국에 사는 필리어스 포그는 엄청난 부자이고 특이한 사람이다. 시간을 칼 같이 지키고 말도 거의 없고 표정도 거의 없고 보기에 따라 까다로운 사람이다. 필리어스 포그는 일하던 하인을 해고했는데 그 이유는 면도할 물을 30도가 아닌 29도에 맞춰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물 온도를 잰단 말인가? 그걸 재고 있는 사람이나 온도를 정확하게 맞춘 사람이나... 하인이야 어쩔 수 없이 돈 버느라 한다지만 필리어스 포그가 이건 좀 너무했다. 그래서 새로운 하인을 채용하는데 그 새로운 하인이 파스파르투이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곧 주인(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책에는 그렇게 표현한다) 필리어스 포그와 세계일주를 떠난다. 


  필리어스 포그는 개혁클럽이라는 휘스트 게임(이 게임 뭔지 나는 잘 모름) 멤버들과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며 2만 파운드 내기를 한다. 필리어스 포그와 파스파르투는 특별한 준비도 안 하고 그날 저녁 바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따라붙는다. 그때쯤 은행이 털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용의자로 필리어스 포그가 지명된다. 인상착의가 필리어스 포그와 비슷해서인데 픽스 형사는 필리어스 포그를 잡고 포상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쫓는다. 결국에는 필리어스 포그 일행과 본의 아니게 여행을 함께 하게 된다. 중간에 인도에서 아우다라는 여자를 구출하면서 일행은 또 늘어난다. 


  어린이를 대상을 간략하게 줄인 책이라 이야기가 단순화되어 있지만 충분히 재미있다. 이 원작 소설의 작가 쥘베른은 프랑스 대표작가이다. 요즘 파리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법률보다 문학에 더 관심을 느껴 여행을 다니며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과학 모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잘 알려진 <해저 2만 리>, <15 소년 표류기>도 그의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기로서도 재밌었지만 등장인물인 필리어스 포그라는 인물과 파스파르투에 더 관심이 갔다. 필리어스 포그는 까탈스럽고 감정도 없는 사람 같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아우다를 구한다. 파스파르투를 구하기 위해 내기에서 지는 게 확실해지는 선택을 한다. 여행하면서 파스파르투 덕을 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곤란에 처하기도 하는데 필리어스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나 같으면 "너 때문에 늦었잖아!", "너 때문에 돈 잃게 생겼잖아!"라는 말을 적어도 50번 했을 거다. 여행하면서 30분 늦어서 기차나 배를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 나 같으면 "아, 좀만 빨리 왔으면...", "아까 좀 서두를걸..." "아, 그냥 아우다 구하지 말걸" 하면서 후회하고 지난 일에 집착할 텐데 그는 그냥 '그렇군'하고 넘어간다. 이런 면을 배우고 싶다. 나는 무슨 일이 내 뜻대로 안 되면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바로 짜증 내고 자책하거나 남 탓을 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도 심하고 뒤끝도 심해서 몇 년째 '걸걸걸 걸무새' 노릇을 하기도 한다. 지난 일은 보내주고 감정은 절제하며 다음으로 넘어가는 필리어스 포그의 모습이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이다. 그냥 소설 속 인물이니까 저러는 거지 현실에는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주변에서도 필리어스 포그처럼 남탓하지 않고 툴툴 털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주변인과 다툼이 있을 때, 나는 아파트를 싸게 매도했는데 그 후 내가 판 아파트가 급등했을 때, 속상한 티 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다음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봤다. 


   파스파르투는 아우다 부인을 구하고 후반부에 인디언 공격을 피해 기차를 멈추는 일을 실제로 몸을 던져 실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파스파르투가 조금 과소평가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느낀 것은 아우다 부인이 너무 필리어스 포그만 멋있다고 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좀 아쉽다. 


30분 뒤 그들은 항구에 도착했다. 거기서 필리어스 포그는 카르나티크호가 어젯밤에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리어스 포그는 여객선을 놓쳐 버렸고 하인 파스파르투는 사라졌다. 하지만 조금도 실망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우다 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필리어스 포그를 바라보자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작은 사고가 생겼을 뿐입니다. 부인." 125쪽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걸고 내기를 한 필리어스 포그를 자기가 내기에서 지고 파산하게 만든 것 같았다. 파스파르투는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필리어스 포그는 파스파르투를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내일 알아보도록 하고, 가세." 209, 210쪽
"주인님! 제게 벌을 주십시오! 다 저 때문에......." "나는 아무도 탓하지 않네. 가 보게." 226쪽


 

파스파르투는 마부 옆에 앉아서 샌프란시스코 풍경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다....... 혼잡한 도로에는 이민 온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미국인들과 섞여 있었다. 164,5쪽

이 부분은 <황금성>에서 메이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러키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던 부분이 떠오름. 이렇게 점들을 이어나갈 수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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