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형과 함께 서울아산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큰 병원답게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큰소리가 났다. 한 손에 책을 든 남자가 접수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가만히 지켜봤다. 접수원은 남성에게 예약 일정을 제대로 했냐고 물어본 게, 남자에겐 비아냥으로 들렸나 보다. 남자는 예약 일정만 알려주면 되지 왜 무시하냐고 따졌다. 병원의 응대 시스템이 이게 맞냐고 몰아쳤다. 접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경호원이 달려왔다. 남자는 내 몸에 손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 보라며 눈을 부라렸다. 경호원은 멈칫하더니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자고 차분히 말했다. 다른 간호사도 다가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남자는 미동이 없었다.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소리쳤다. 접수원이 직접 사과하기 전엔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마치 장승같았다. 형의 진료순서가 되어 그 상황을 다 보지 못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집에 오는 내내 그 남자와 접수원의 다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접수원이 머리끝까지 화가 날 정도로 신경을 거스르게 한 걸까, 그 남자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일까. 뭐가 맞는지 모른다.
그 남자는 문제를 차분하게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볼 수 있는 갈등이다. 그런데도 쉽지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소리치던 그 남자가 들고 있는 책 때문이었다. 그 책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