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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ts meaningless Jan 07. 2023

선택하지 않을 자유.

꼭 선택을 내려야 했을까.

예전에는 선택의 주도권을 쥐는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주로 선택을 내리는 직책에 있어서 그런지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선택을 내릴 일이 생기면 내가 나서서 결단을 내렸다. 나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삶이 뿌듯했다.


10년 동안 몸담은 직장을 뒤로하고 약간의 허무함을 느낀 시기가 있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가 내린 선택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녔다는 걸 느꼈다. 더 컸던 건 누군가의 선택권을 내가 가로챈 적도 있다는 미안함을 발견한 것이고 그것보다 더 큰 건 그런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었다. 참 철이 없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선택할 일이 생기면 주로 상대에게 선택해달라 부탁한다. 이렇게 되니 한 가지 뚜렷한 좋은 점이 생겼다. 선택할 자유가 아닌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느낀 것이다.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나를 초연하게 한다. 어떤 선택에 따를지 말지 자유의지가 생긴다. 내가 선택함으로써 받는 책임과는 다른 개념이다. 내 선택의 책임은 다른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선택에 따를 책임을 진다는 건 순수하게 나에게만 정해지는 책임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덜 고려하게 된다. 나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하게 한다. 이에 따라 스스로 더 집중하고 깊게 들어가 볼 수 있다. 나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이다.


다르게 말해 내려놓는다 해야 할까. 내려놓으니 마음 한 곳에 여백이 생기는데 그 공간은 빈 상태 그대로의 어떤 의미가 생긴다. 그 의미는 때마다 달라진다. 의미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 공간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걸 보는 게 지루하지 않다. 파도가 보여주는 물결은 뻔한 반복인 걸 알지만 그 모습은 항상 달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꼭 내가 나서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선택권을 양보하고 내가 따라가 보자. 세상을 넓게 보는 방법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경험하지 않고는 못 느낄 것들을 요즘엔 많이 한다. 사는 게 재미있다. 깨달음과 경험에는 넘침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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