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선택을 내려야 했을까.
예전에는 선택의 주도권을 쥐는 게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직장에서도 주로 선택을 내리는 직책에 있어서 그런지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선택을 내릴 일이 생기면 내가 나서서 결단을 내렸다. 나는 현명한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 삶이 뿌듯했다.
10년 동안 몸담은 직장을 뒤로하고 약간의 허무함을 느낀 시기가 있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내가 내린 선택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녔다는 걸 느꼈다. 더 컸던 건 누군가의 선택권을 내가 가로챈 적도 있다는 미안함을 발견한 것이고 그것보다 더 큰 건 그런 삶을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었다. 참 철이 없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선택할 일이 생기면 주로 상대에게 선택해달라 부탁한다. 이렇게 되니 한 가지 뚜렷한 좋은 점이 생겼다. 선택할 자유가 아닌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느낀 것이다.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나를 초연하게 한다. 어떤 선택에 따를지 말지 자유의지가 생긴다. 내가 선택함으로써 받는 책임과는 다른 개념이다. 내 선택의 책임은 다른 사람이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선택에 따를 책임을 진다는 건 순수하게 나에게만 정해지는 책임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덜 고려하게 된다. 나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하게 한다. 이에 따라 스스로 더 집중하고 깊게 들어가 볼 수 있다. 나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이다.
다르게 말해 내려놓는다 해야 할까. 내려놓으니 마음 한 곳에 여백이 생기는데 그 공간은 빈 상태 그대로의 어떤 의미가 생긴다. 그 의미는 때마다 달라진다. 의미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 공간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걸 보는 게 지루하지 않다. 파도가 보여주는 물결은 뻔한 반복인 걸 알지만 그 모습은 항상 달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꼭 내가 나서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선택권을 양보하고 내가 따라가 보자. 세상을 넓게 보는 방법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경험하지 않고는 못 느낄 것들을 요즘엔 많이 한다. 사는 게 재미있다. 깨달음과 경험에는 넘침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