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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Nov 13. 2016

순실의 시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통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되돌아보기

 2009년 1월 15일, 1200명의 구조대원과 7척의 출근보트가 155명 승객을 구해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단지 24분. 보통 비행기 사고에는 생존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공청회에서 모든 전문가들의 분석결과와 시뮬레이션을 분석한 것을 토대로 결론을 "위대한 기장" 이라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였습니다. 제프와 도나, 쉴라, 도린 (부조종사 및 승무원들 이름), 승객 모두와 구조대원들, 관제사들, 출근보트 선원들과 스쿠버 경찰들, 모두 같이 해낸겁니다. 우린 모두 살았어요."


영화의 한 장면, 비행 사고 이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주역들


 올바른 일, 성과있는 일에 대한 공적 평가를 하거나 또는 잘못된 일에 책임을 물을 때 우리는 언제나 그것에 대한 경중을 평가한다. 물론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따지는 것조차도 결국은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단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통하여 좋은 것은 더 좋게, 나쁜 것은 재발하지 않도록 후속 시스템을 만들고 더욱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한걸음을 위해서다. (그저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을 뿐이다.)


 그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영웅들이 이뤄낸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에 자신도 하나의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선거를 실시하고 역대 최대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은 결국 우리의 손으로 만들었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괜히 불필요한 것에 관심을 둔다고 구박받지는 않을까 하는 이유로 우리는 헌법 제 1 조 2항에 보장된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을 "사유화" 하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위선자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선거 때의 잠시의 선동에 휩쓸려 나아가는 선택이 아니라 퇴보를 선택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은 순실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필자는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고 믿기 때문에 위선의 시대가 계속되는 것보다 혼란스러워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비선실세는 최순실 일당으로 주목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닐 수 있다. 그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어쩌면 비선실세들 간의 알력 다툼이 벌어졌고 이를 정리하기 위한 권력 다툼의 과정에서 좀 더 치밀하지 못하게 권력을 사유화한 진영(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 일당)이 전면에서 모든 국민의 분노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지도, 그리고 이 투쟁에서 승리한 진영은 조용히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법률가 출신의 정치 지도자가 많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황이었으면 "탄핵" 이 벌써 발의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점에 어차피 넘어오는 대권이라고 생각하는 현 야당은 개별 대권 후보별, 진영별로 어떤 판이 가장 유리한지 계산하느라, 또한 이번 일로 완전히 해체 기로에 놓이게 된 새누리당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권력을 이양받은 정치인들은 사건 발생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입장 조차 밝히지 못하고 이제서야 뒤에서 계산 정리되고 나니 타이밍에 맞춰 하야를 촉구하거나,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자신의 이익에 국민의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하고있다. (이 와중에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그것은 인간 군상이 모이면 반드시 그런 사람이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자연의 섭리다.)


 그들은 원래 그래왔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정치적 이념이 불분명하고 그저 "거대 기득권" 의 패돌리기 일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러는 것에 대해서는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분노하면서도 그들의 행동 원리까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또한 내가 이 지점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들의 기득권은 결국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 제1조 2항에서 얘기하는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가 결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번 돌아오는 나의 헌법에 보장된 권력을 대신할 사람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날. "그래, 이번에는 여자 대통령이 한번 해야지.", "부모들을 그렇게 비극으로 잃은 사람인데 도와줘야지." 같은 어쩌면 너무 안이한 선택을 했던 모두가 사실은 오늘의 시대를 만들어낸 유책임자들이라는 것을 이제라도 기억해야 한다.


 투표율만 높은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투표의 질" 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우리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통렬한 인식전환과 나의 권력을 대리했음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도 조금씩 희망은 보인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청년들이 어려운 것은 청년들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라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금방 고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짜 우리가 얘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어쩌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어쩌면 내가 최순실은 아니었나 라는 자성의 시간을 가질 때라는 점. 


 이 사회는 유독 갑질을 좋아한다. 그 권력의 이름이 때로는 소비자일 수도 있고, 조직의 상급자 일수도 있고, 때로는 부모님, 선생님, 기자 라는 이름으로도 존재한다... 즉, 거래 관계에서 "갑" 인 상황이라면 그것에는 권력이 수반된다. 그런데, 우리는 갑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저 권력만을 휘두를 수 있는 뿐 그것이 가져오는 책임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갑은 암 세포처럼 권력을 사유화하고 이를 휘두른다. 책임은 그와 더불어 실종된다. 그 대중적 행동의 갑질의 예가 바로 다음 사진이다.


 위의 사진은 무한도전 가요제 이후 알펜시아 리조트의 모습이며, 아래 사진은 매년 반복되는 해수욕장 쓰레기 더미의 모습, 그 아래는 길거리에서 너무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담배꽁초 사진이다. 이러한 행동은 어떤 의식에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세금(또는 이용료)를 내고 왔는데 이런 쓰레기는 알아서 치워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차, 내 옷, 내 주머니가 더러워지는 건 싫어" 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 아닐까?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권한을 확대해석하고 자기 책임 의식을 지워버린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최순실 사태 이전의 김영란법을 보면 우리 사회 기저에 깔린 의식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는지 알 수 있다. 도대체 왜 공직자들, 기자들의 밥 값까지 "을" 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것을 왜 법으로 제한해야 하는 지경까지 왔는지, 우리 모두가 어쩌면 우리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작은 최순실" 로써 대한민국 사회에서 작용하고 있지 않았는지 이 역시 통렬하게 반성하고 자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저 책임자만 만들어내고  그들의 잘못이라고만 말해서 단죄하면 우리의 분노는 조금은 가라 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분노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다음 세대에게 다시금 이런 사태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초절정 마법사와 같은 리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있는 자리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 그 영웅들이 그 자리에서 일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리더를 판단하는 역량을 우리 스스로 기르는 것.

  

 그것이 지금 순실의 시대를 맞이하여 광화문의 촛불과 함께 진정으로 켜야 하는 우리 마음 속의 촛불일 것이다.

작금의 사태가 분노의 해소가 아닌 앞으로 가는 한걸음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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