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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엔진 Nov 04. 2017

통합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의도되지  않은 무능력함이 공동체에 가져오는 해악에 대하여

 토요일 아침. 우리 집은 배관교체공사로 시끄럽다. 온수배관에 누수 발생이 확인되어 교체 공사를 진행하다가 알게 된 여러 가지 사실을 기반으로 몇 글자를 남겨보려고 한다.

누수가 확인된 배관만 1차 공사, 전체 배관을 교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건축물의 내부 근간(배선 및 배관, 골격)은 겉으로 보여지는 인테리어보다 훨씬 중요하다. 사람으로 따지면 명품으로 도배하고, 깔끔하게 외모를 꾸몄다고 해도 그 사람이 가진 지성과 인성이 더 중요할 뿐 이러한 조화가 없다면 그건 내일이면 사라질 수도 있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건설사의 부실시공은 사실 하루이틀된 문제가 아니다. 최근 부영건설이 경기도에 시공한 아파트에서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하자보수건수가 발생한 것이 이슈가 되었지만 작은 단위의 하자 보수 소송은 언제나 있어왔다. 2015년 10월 운좋게 조건이 바뀌기 이전 지금은 절대 불가능한 최고 조건의 보금자리론 막차를 타면서 구입한 이 아파트도 실제로는 배관재질의 문제로 인해 온수배관 하자보수 소송이 있었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전반적인 아파트 거래 시스템에 대한 문제는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사실 이러한 관행적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수전노와 같은 이윤 추구"가 이런 모든 문제의 본질이다. 건설사의 "자재" 는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에 법령이 허용하는 수준에서 당연히 "가장 좋은 것" 보다는 "법령이 허용하는 수준" 에서 선택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단 건축물의 시공이 완료되어 자산권이 인계되고 나면 하자보수 계약이 일정기간 체결되지만 그 기간도 한시적이고, 실제로 "건축물을 부셔가면서 하자를 입증해내기가 어려운 구조" 이기 떄문에 그 법령이 허용하는 수준 이하의 장난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제 당신이 A건설사의 자재구매담당 실무자라고 가정하자. 총 1,000세대 규모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이고 1세대에 들어가는 세대당 총 200미터 정도 배관 자재 구매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자재는 아래와 같다.


1) 법령이 허용하는 최소 수준의 품질합격 배관 : 미터당 10,000원

2) 실무자 판단에서 현행 시장에 있는 제품에서 제일 좋은 배관 : 미터당 20,000원


1번을 선택하면 20억 / 2번을 선택하면 40억이다. 건설사의 최고 의사결정자가 수익보다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원가기획지침을 아주 강력하게 내부 프로세스에 적용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1번이 선택될 수 밖에 없다. 사실 1번으로 적용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건축물의 적법 자재 사용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운 난해한 구조이기 때문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또는 실무자가 부정을 저지르면서 납품업체와의 이면 계약을 통해 법령이 허용하지 않는 최소 수준 이하의 배관을 선택하여 자재비를 아끼게 되는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만약에 위의 가정에서 미터당 5,000원으로만 줄이면 10억의 비용절감이 되고 납품사에 실무자가 20% 만 리베이트를 요구해도 실무자가 챙길 수 있는 것은 2억이다. 사실 부실 건축물은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게 된다.  


 위와 같은 상황은 도덕적 모럴 해저드이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보기로 하고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조금 다르다. 벽산블루밍아파트의 온수 배관은 KS인증 마크를 받은 해당 건설이 시행되던 시기에 나름 유행했던 자재라고 한다. 다만 구조적으로 직선 형태라서 중장기적으로 보면 "균열" 에 취약한 구조인 자재였던 것이 문제다. 그래서 해당 하자에 대한 변경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는 "방사형" 조직으로 만들어진 배관을 사용하게 된다.

왼쪽이 직선형 조직 구조 / 오른쪽이 방사형 조직 구조

 단순한 법령 규정의 자재 기준 및 테스트가 있었을 것이고, 현재 우리 집에서 문제가 된 직선형태의 자재의구조로도 10년 이상 문제 없이 사용됐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해당 자재가 선택 및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만 개념적으로 보면 방사형 조직구조가 중장기적으로 좋은 조직구조이며, 균열이 발생하더라도 직선형 일자 구조에 비해서 피해가 적다는 것은 실무자가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어떻게 담당 실무자가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일을 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자신의 일의 범위를 한정짓기보다 조금 더 넓고 통합적으로 공부하고 업무를 파악하면 오히려 이런 문제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를 통해서 하자보수에 대해서 20억 민사 소송을 진행했었고 일부 승소 판결로 5억원의 보상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 실무자가 좀 더 통합적으로 공부해서 방사형 조직 구조의 배관을 넣었다면 회사가 굳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5억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해당 문제를 제외하면 인테리어 구조나 전기 차단 안전 구조, 배관을 제외한 기타 부속품 하나하나도 상당히 높은 퀄리티의 자재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했다. 오히려 배관 연결부에 쓰이는 자재는 지금은 시중에서 팔지도 않을 정도의 좋은 제품이라고 공사 담당 사장님이 말씀해주셨다)


 물론 단위적으로 봤을 때는 개별 개인은 통합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일반적인 수준의 무능이 공동체에 그렇게 눈에 보이는 큰 해악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무능의 결과과 쌓이고 쌓이면 결국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뇌관으로 작용하여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폭발의 위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어느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통합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내가 하는 실무의 Core 한 전문성과 더불어 최소한 관계 법령, 기술 동향, 업계 동향 및 재무적 사고와 더불어 그것이 미치는 조직문화적 영향과 시장에 미칠 영향, 마지막으로 정무적 감각을 같이 갖춰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 누나를 힘들게 했던 조달청 수수료 문제도 결국 그 본질은 통합적으로 사고 하지 않은 관료의 일상화된 무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귀결되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결코 그 보상이 돈이나 권력이라는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나라의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았던 그 자리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전보다 나아지는 것. 이를 통해 최소한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조금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외형적인 보상보다 나에게는 더 소중하고 큰 보상이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낸 형상일 뿐, 실제 세상을 구원해가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행동이다. 영웅을 기다리지 말고, 정치인을 욕할 필요도, 직장 상사를 욕할 필요도, 타인을 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결국 상책이다.


 

나름 깨끗해진 배관 연결부위를 보면서.... 앞으로 또 얼마 더 써야되지?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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