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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5. 2020

여행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들

경험과 추억을 소유하는 삶

우리 형이 스무 살이 되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 제주도도 한 번 못 가 본 우리 형제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독일을 경유해 영국에서 여행을 시작해, 이태리, 프랑스, 스위스 총 4개국을 14박 16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다녀왔다.


서울도 몇 번 안 가 본 우리는 공항도 처음, 비행기도 처음, 해외도 처음이어서 잔뜩 긴장한 상태로 여행을 떠났다.


혹시나 길을 잃거나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 갱들을 만나 돈을 빼앗기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막상 도착한 유럽은 여행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멋진 건물들, 고풍스러운 분위기, 서유럽 특유의 분위기와 음식들, 아무렇게나 말을 붙이고 친구가 됐던 사람들, 게다가 나는 미성년자라 못 먹는 척하기 힘들었던 값싼 맥주까지.


물론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 됐다.



사실 위에 여행 얘기를 꺼낸 건 요즘 자꾸 생각하게 되는 한 문제 때문인데,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게 된 강의에서 한 교수님이 우리는 소유보다 경험하고 존재하는 소비를 많이 해야 한다면서 "새로 산 옷에 관련된 이야기는 한 달 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녀왔던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십 년이 지나도 커다란 가치를 지니며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성해낸다."라는 식의 강의 내용이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딱히 옷에 관심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작년에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던 청바지 이야기를 난 올해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물론 누군가에겐 깊은 사연이 담긴 옷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열여섯 살 마지막에 떠났던 유럽여행 이야기는 십오 년 가까이 된 지금도 자주 꺼내곤 한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기존에 지녔던 가치관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도, 독특한 발상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거기에 내가 존재해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인상 깊었던 구절이 몇 개 있는데, 그중 '만약 나의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나의 소유를 잃을 경우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무소유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한다. 서른이 된 나에겐 생활비도 필요하고 언젠가 가족을 꾸려 함께 장만할 집이나 자식들이 먹고 싶어 하는 맛있는 음식도 사줘야 할 것이고, 갑자기 병이라도 난다면 수술비라도 내야 할 것이고, 공칠이가 아프면 병원까지 데려갈 차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성공한 상태로 10년을 살다가 집도, 차도, 돈도, 직업도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지혜로운 생각으로 삶을 풍요롭게 경험하며 아름답게 느끼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새로운 가치들과 부딪히며 매일매일 새롭게 나를 점검하고 나에게 있어 무엇이 변해가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고민이 많아지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른의 나는 현명한 선택과 판단으로 나의 삼십 대를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3월엔 라오스에 가기로 했다. 그 여행에서 나는 또 무엇을 느끼고 올까.

201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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