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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6. 2020

내가 집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랜만에 분위기 좋은 곳에 와인을 마시러 갔는데 마음에 드는 안주가 없으면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몇 배나 비싼 그 와인 값이 갑자기 아까워지기도 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말 저녁에 친구와 조용한 곳에서 담소를 나눌만한 자그마한 소주집을 찾으면 이젠 온 가게에서 틀어대느라 있던 그리움마저 떨어져 나갈 만한 90년대 댄스 음악이 나와 한껏 목소리 높여 말해야 하는 나를 지치게 한다.



혹은 분위기, 식사, 술, 함께 하는 사람마저 완벽한 그 자리에 앉아 만족스러운 마음을 채워가는 어느 순간, 갑자기 들어온 여덟 명 남짓의 단체손님이 우리 테이블 옆에 앉는 덕에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기 일쑤다.



반면 집이라는 공간은 가로수길의 분위기 좋은 바나 카페처럼 고급스러운 소파와 인테리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고 마시고 싶은 와인을 저렴한 값에 골라(와인은 도무지 마트와 레스토랑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나처럼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에겐 부담이 된다, 물론 월세와 인건비, 세금 등을 부담하는 레스토랑 측엔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다) 원하는 사람만 불러서 나름대로 준비한 안주를 꺼내놓고 어설프지만 붉은빛이 나는 스탠드 몇 개를 켜놓으면 남 부럽지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외출할 때마다 매번 데리고 나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 피할 수 없는 내 소중한 반려견 공칠이까지 옆에 눕혀놓고 있으니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다 모아놓은 모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얘기를 왜 꺼내게 되었냐 하면, 예전엔 만족이나 행복이라는 것을 사회적인 활동이나 외부에서 주로 찾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밖에서 누굴 만나 어디에 가서 무엇을 즐기느냐에 따라 내 삶의 질이나 가치가 달라지기도 하고, 내가 무인도에 사는 게 아니니 불가피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정년을 마치거나 청장년기에 온 힘을 바쳐 저축해 온 돈으로 서울 외곽이나 지방으로 떠나 전원생활을 하며 노년을 보내는 것을 보면 그제야 온전한 자신의 공간 속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다.



그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도 없이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 시작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밖을 돌아다니며 사회성을 형성하기 바쁜 자식들은 왜 아버지께서 내 용돈은 그토록 적게 주면서 환갑이 다 돼 그 비싼 전축을 마련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안전한 이 공간을 온전히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려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손에 잡히고, 이리 눕고 저리 누워도 내가 좋아하는 것 투성이인 이 집은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나에게 행복을 준다.



이런 얘기를 하고 나니 내가 원하는 커다란 집에,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소파와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집 안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지는 성능 좋은 스피커도 있고, 호텔 부럽지 않은 푹신푹신한 매트리스가 올라간 침대와 책으로 가득한 책방도 있으며, 요리가 하고 싶어 지는 부엌에, 공칠이가 마음껏 뛰어놀 만한 마당 한쪽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장비가 마련돼 밤이면 주민신고 걱정 없이 노래하고 술 마시며 떠들 수 있는, 아침에 일어나 이층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물욕이 없다며 한 계절에 옷을 하나 살까 말까 하고, 한 번 구입한 물건을 십 년은 족히 쓰는 나에게 정작 필요한 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몇 년 벌어서는 해결하지 못할 이 문제를 가지고 나는 어떤 식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 저축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내 침대 이불속에 누워 온수 장판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미래를 그려보는 월요일 아침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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