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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7. 2020

완벽한 관계

노력 없이 꿈꾸는 완벽한 관계라는 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복잡한 관계에 지친 요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가식이나 거짓으로 자신을 억지로 꾸미지 말라는 말에 가깝지,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혹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한들, 상대방은 있는 그대로이고자 하는 이기적인 당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해서, 자기 편한 대로 해도 이 사람은 날 사랑해준다고 착각하며 보낸 세월 뒤에 다가오는 것은 때아닌 이별과 상실인 것이다.

그저 묵묵히 본인의 노력을 알아주고 변화하는 날을 위해 힘써오던 인간의 배려와 희생이 모두 무시당하고, 그래서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던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을 잃었을 때, 노력했던 쪽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완벽한 관계도 없다. 누군가는 한 발 물러나고 누군가는 앞서가야 할 때가 있고, 그것이 반대로도 작용하고 그 과정이 반복될 때에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위하고 더 나아질 나를 꿈꾸며 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상처는 치료하고, 사랑은 키워나가면서. 그렇게 서로를 간호해나가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관계에는 믿음이 없다. 믿음이 없는 관계에는 노력이 없으며 노력이 없는 관계에는 결국 미래가 없다.

일순간 느껴지는 현재의 만족만으로는 관계를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이 날 이후에도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희망과 안도가 서로 손 붙잡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는 와시다 키요카즈의 <듣기의 철학> 속 한 구절을 인용하여 시간을 내어준다는 건 내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이 글들은 내가 죽어가며 쓴 글이라고 얘기한다.

글쓰기에도 생명을 쏟듯,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필요 이상으로 시간과 정성을 쏟을 때 감동하게 된다.

노력해본 적이 있는 인간은 누군가를 위해 힘쓰는 것이 얼마나 고되면서도 동시에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의 노력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다.

힘들고 지치는 과정 속에서도 노력하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더 앞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어리고 이기적인 나를 성장시키리라는 믿음으로.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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