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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Nov 27. 2020

이름 모를 마음

  책을 내기 전에도 꾸준히 글을 썼지만 책을 낸 후엔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일기 비슷한 단상들부터 쓰고 있는 소설에 두세 줄을 더하거나, 공연으로 올렸던 희곡의 일부를 수정하고 떠오르는 좋은 문장을 메모장에 기록한다. 양과 상관없이 글을 쓰는 행위에 집중하고 그것을 하루 중 필수 일과로 만드는데 노력한다.   


  일상에서 영향을 자주 받는 편인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공원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어떤 현상을 발견했을 때 관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단편적이지만 마음이 동(動)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대부분 충동에 의해 떠오르는 생각들이기 때문에 바로 글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써내려 간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 <그래도 계속해보자는 말밖엔>이다. 


  충동에 의해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들은 처음 느끼는 감정들이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 온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켜켜이 쌓여온 나의 생각들이 글로 변화되면서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것뿐이다. 이런 습관은 연기를 하면서 생긴 것인데, 나 같은 경우 인물의 목표나 의도에 집중하지 감정을 믿지 않는 편이다. 감정이란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생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기억과 현재의 충돌이다. 그러니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은 연기하려는 나에 가깝지 인물의 감정과는 동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에 되도록 감정을 끌어오려는 연기를 배제하는 편이다. 


  그러니 의도와 목표를 분명히 하기 위한 노력이 배로 필요한데,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유발되는 감정선들을 말로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슬픔이라는 것을 슬프게 연기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연기라면 'A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B를 지키고 싶었지만 결국 눈 앞에서 B를 잃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린다'라는 행동에 집중한다. 행동에 집중하려면 그 둘 간의 관계라던가 함께 해 온 여정에 대한 구체화가 필요하다. 마치 진짜 연애를 했던 것처럼 그들이 갔던 식당이나 좋았던 여행지, 가장 크게 싸운 날 등을 대본에 맞게 치밀하게 설정하는 작업을 통해 전사를 만든다. 그렇게 나와 그가 꽤나 짙은 사랑을 해온 가상적 사실이 뇌에 진실이라고 입력되면 감정은 행동에 맞춰 따라오기 마련이다. 


 결국엔 시간을 거쳐 온 이야기 혹은 쇼크를 줄만한 결정적 사건이 인물을 변화시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우리는 이때 이런 감정들을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다. 슬픔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현재의 감정을 묻지 않고 왜 슬픈지 이유를 묻는 것처럼 우리는 감정을 진단하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주원인은 특정 사건에 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라는 친구의 말만 따라 여러 가지 일이 한데 모여 터져 버린 그 감정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위로를 주려는 사람은 하나씩 하나씩 이유를 파헤쳐 가며 그가 '왜' 슬픈지를 찾아준다. 슬픔의 원인을 파악한 사람은 눈물을 그친다. 


  감정이란 마음속에서 연속적으로 일렁이는 무규칙한 파도 같은 것이다. 나같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모든 파도를 다 감당할 수가 없다. 타기 좋은 파도를 선택하고 때로는 흘려 보내기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만 바다 위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커다란 도움이 됐다. 감정 하나하나를 정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비슷한 사건을 끌어와 그에 따른 정서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 이유 모를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과 연출이 상상하는 그림 속에서 내가 창조한 인물을 적절히 혼합시키기 위해 배우는 본인의 생각 외에도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해야 한다. 예상 밖의 마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름 모를 감정에게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종이 위에서 태어나 누군가의 힘으로 생명을 얻는 존재들의 이름 없는 마음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이 글이고 연기다. 그러니 예술 따위 과학이나 의학보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예술을 예찬하며 살아간다. 책 속에 빠져 다른 차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말의 시간, 스크린에 빠져 환상의 나라에서 울고 웃는 두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삶을 산다. 현재로 복귀해서 현실 감각을 깨닫기 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우리는 변화한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미래의 답을 모르는 나는 오늘도 현재의 마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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