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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ug 12. 2021

부끄러운 경험

대학 시절엔 아르바이트가 정말 하기 싫었다. 연습 시간이 긴 연극과 생활과 다양한 교양 수업 과제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느껴졌고, 그 와중에도 나날이 발전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연기에만 집중해도 잘하는 배우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 외의 일에 빼앗기는 시간을 불행하게 여겼던 시절이다.

 

집에서 보내주는 월세와 용돈이 있음에도 서울 자취살이는 녹록지 않았고 각종 행사나 친구들의 모임에서 소외당하고 싶지 않아 절약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 보니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너무 많은 걸 즐기고 싶어 하는 욕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먹고는 살겠다고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다. 건설 현장이나 택배, 배달이나 샌드위치 만들기, 카페와 와인바 등을 전전하며 시간이 될 때마다 일 했다.

 

그 당시엔 오디션이나 현장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귀한 기회였기 때문에 정기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어려웠다. 갑자기 일을 빼기도 어렵고 그들이 생각하기엔 별 것도 아닌 일로 스케줄을 조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일을 구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일 했다. 다 연기의 밑거름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일 했다. 가끔은 이래서 배우는 언제 되나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순간이 꽤 있었다. 새로운 일이 주는 설렘과 그 일이 익숙해졌을 때의 지겨움, 그 지겨움을 극복하고 얼만치 다 배웠다고 자부할 때 즈음 다가오는 디테일과 부수적인 일이 나를 새롭게 무장시키고 발전시켰다. 그 경험들을 통해서 다양한 역할을 맡을 때 도움이 됐다. 


결국엔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십 대 시절엔 꿈과 다른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을 비판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상상과 단편적 경험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까진 절대 알 수 없는. 


배우는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칼로 찌를 수 없고 폭탄을 실제로 집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어쩌면 직업적인 행동들은 경험자들 앞에서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상황에 빠져보지 않으면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것들을 온갖 상상력과 연구 자료를 끌어모아 체화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겪어보기 전엔 절대 모른다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한다. 살아가면서 처음 겪는 일이 정말 많다. 그런 일들은 매번 어렵고 더디다. 경험이 쌓일수록 예전에 내가 왜 그걸 못했는지 느껴진다. 겉에서 볼 때와 직접 그 안에 빠져들어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카페에서 오래 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카페를 운영할 엄두를 냈을까. 실패한 배우들만 간다고 생각했던 연기학원에 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중학교며 각종 학원에 강의료를 받으며 특강을 다닐 수 있을까. 경험은 좋은 것이다. 경험으로 무장한 사람은 초보자가 백 번 할 일을 단번에 끝낸다. 물론, 그전에 수백 번의 시도를 했겠지만. 그 시간을 거쳐 온 사람의 밀도가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경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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