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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Sep 18. 2021

카페

  카페 운영을 제안받았을 때 처음으로 고민한 것은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일이었다.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했다. 단순히 돈벌이로 여기면 금세 그만둘 것이 뻔했다. 무조건 특색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곳에서 복사해 온 레시피로 대충 음료를 만들어 내어 주고 구색에 맞춰 인기가 많다는 디저트를 가져와 판다고 해서 스스로 만족할 리 만무했다. 무엇이 되든 사랑하는 공간, 사랑하는 메뉴를 만들어야만 카페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나란 인간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금방 포기해버리는 스타일이니까.


  하지만 동업을 해야 하는 개인적 상황과 기존에 와인바로 운영되던 곳에 카페를 추가로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는 없었다. 차려진 밥상에 좋아하는 반찬 몇 개를 바꾸거나 추가해놓는 정도랄까. 하지만 가끔은 남이 차려준 반찬이 입맛에 맞을 때가 있는 법이라 취향이 비슷한 동료들 덕에 내 상상에서 멀지 않은 카페가 되었다. 깔끔하고 쾌적한 공간, 테이크아웃 전문점처럼 붐비지 않는 3층이라는 공간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루프탑이 만들어졌다. 


  오픈 준비를 마친 뒤 머신에서 처음으로 뽑는 커피는 매일 내 것이다. 그날의 원두 상태와 분쇄된 원두를 압축하며 내려오는 커피를 바라보고 맛보는 것이 카페 사장으로서 처음 할 일이다. 향긋한 원두향과 얼음 사이로 흘러내리는 에스프레소 샷이 잔 속에서 퍼져갈 때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점심시간에는 주변 회사 직장인들이 몰려오고 오후 두 시가 넘어가면 지인들이 한둘 방문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사람부터 매일같이 보다가 카페를 준비하면서 못 보게 된 얼굴까지. 한 명 한 명 자리를 잡고 몇 시간의 수다를 떨어도 부족할 만큼 할 얘기가 많지만 중간중간 들어오는 손님을 응대하거나 밀려 있는 카페 업무를 하다 보면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는 지인들이 많다. 못다 한 이야기는 언제쯤 완성될까. 


  어쩌면 못다 한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카페라는 공간을 운영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카페를 차린 이유에 돈을 벌고 사업에 도전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가슴 깊이 들어가 보면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을 꿈꾸지 않았나 생각한다. 프라하의 카페 루브르에서 프란츠 카프카와 아인슈타인이 수다를 떨 듯,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달리, 콜 포터 등이 한 공간에서 각자의 예술과 인생에 대해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아스론가라는 곳도 토론과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문학, 음악, 영화, 사진, 그림, 철학, 문화, 역사 등 모든 장르를 넘어 각자의 에피소드를 나누고 맞바꾸는 곳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할 수 없이 나오는 말들이지만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되는지, 백신은 맞았는지 등의 이야기는 이제 지겹다. 안부를 묻는 일이 많아져 좋은 점도 있지만 대답이야 다들 비슷하지 않은가. 진정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질문과 답변을 골라가며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새로운 질문은 쓰지 않던 세포를 잠에서 깨워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면 그저 예술 이야기라도 좋다.  캐넌볼 애덜리의 연주에 맞춰 커피를 마시며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가 내리쬐는 대낮부터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며 왕가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각자 읽은 책과 어제 본 영화가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고 사람들의 비전을 들으며 더 큰 자극으로 동력을 얻고 싶다. 자연스러운 성장이란 그런 것이니까. 


주제가 무엇이든 현실판 <미드나잇 인 파리>가 되어 온갖 아티스트들과 명사들이 각자의 자아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그것이 내가 꿈꾸던 카페가 아닐까. 사람들은 입구를 찾기 어려워 카페 건물을 지나쳤다 다시 돌아오곤 한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길 펜더가 마차를 놓치면 가게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꿈같은 공간이 되고 싶다. 노후한 동대문의 한 골목 안에 숨겨진 예술과 낭만이 가득한 비밀스러운 공간. 아스론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짧은 인생을 영원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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