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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Oct 08. 2021

개성

  부러움을 사는 인생보다 자기만족으로 삶을 지탱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속으로 되뇐다. 타인에게서 받는 인정과 거기서 발생하는 부러움에 힘입어 조금 더 나아가거나 혹은 우쭐해질 때도 있겠지만 타인은 타인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누군가가 내 삶을 궁금해하고 모방하려고 한다 해도 그것은 한 시절에 불과할 수 있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한 때 중독된 영향력 전파에 삶이 매몰되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 존재감을 낮추게 되고 퇴물이 된 울적한 기분에 빠지고 말 것이다. 


  물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해가며 시대에 맞춰 나가려 노력하는 이도 분명 있겠지만 여기서 바라봐야 할 포인트는 목적의 대상이 누구인가 이다. 타인을 향한 만족은 끝이 없다. 불특정 다수의 입맛이야 말로 불특정 하다. 다양한 입맛을 맞출만한 폭넓은 재능이 있다면 욕심을 부려볼 만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을 평생 남의 입맛에 맞추는데 쓰다가는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망각하게 될까 두렵다.  


  반면 만족의 대상을 자신에게 맞추고 세상과 화합하려는 노력은 보다 편안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했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인정이야말로 개인의 삶을 인정받는 일이 아닐까. 유명인사가 될 게 아니라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만 유행이 아니었던 것이 나로 인해 유행이 되기도 하고, 이상하다 여겼던 일이 보편적인 일이 되게 만들어지는 것. 

 

 사실 영향을 미치고 말고는 인간의 의무라기보다 태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숙제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사소한 행동이나 말 하나로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게 사람이다. 그렇게 서로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으며 맺는 게 관계 아닌가.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탄생 자체가 관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어려서는 부모의 입맛을, 성장하면서는 친구나 선생의 입맛을,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의 입맛을 맞춰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개성을 모으면 아마 하나의 행성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음식점에서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결정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과연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는 걸까. 타인을 배려하고 우선해주는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그럴 때면 괜히 그 사람의 속내를 끄집어내고 싶어 진다. 


  어쩌면 관심 없는 분야에 관해 어떻든 상관없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 또한 인간이라 누군가에게 만족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들로 채워지는 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마련한다. 혼자 식사를 하고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그 순간 원하는 것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배려하며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시간을 자주 보내다 보면 타인과 있을 때 타인의 입맛을 맞추는 게 덜 괴롭다. 이미 개인의 솔직한 선택의 시간을 보낸 후니 여유가 생겨 타인의 세상도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경험치를 늘려가며 살아가는 인생이 꽤나 즐겁다. 나 자신을 챙겨가며 타인의 세상도 들여다보는 삶. 나와 다르고 같은 것들은 무엇이 있나 살피며 나름대로 평균치를 내다보면 개개인의 삶이 딱히 불행할 이유도 없다. 좋고 싫음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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