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Mar 14. 2020

안부

잘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지금은 어쩌다 연락이나 가끔 하는 사이가 됐지만, 예전에는 매일 같이 어울렸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항상 똑같다, 오디션 보고 떨어지면 소주 한 잔 하며 잊어버리고, 연습하고 영화 보고 돈 떨어지면 아르바이트 구하고".



'항상 똑같다.'라는 말을 하고 나니, 내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을까 괜한 신경이 쓰였다.



문자를 보낸 지 한참이 지나, 괜히 덧붙여 말하자니 십 년이 넘게 배우가 되겠다는 친구가 연기로 변변하게 먹고 살질 못 해 궁색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내 그만두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침대에 대(大) 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예전 같았으면 조금 더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근황을 얘기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뭐랑 뭐 촬영하고 지금은 좀 쉬고 있어. 또 다음 거 준비해야지", 라거나 "누구누구 알지? 그 사람 나오는 작품인데 리딩하고 촬영 준비 중이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별 볼 일 없는 사람보다 별 볼 일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 치는 사람이 더 재미없게 느껴졌다.



본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으면 스스로라도 알려야 쓰임을 받는 일이기에 필요에 따라 포장해야 할 때가 더러 있지만, 적어도 나를 떠올려주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나이가 먹어갈수록(물론 나는 매우 젊다) 누군가의 능력과 지위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달라지는 광경을 자주 마주하는데, 상대의 능력을 알기 전과 후에 대하는 성격이 매우 다른 모습을 볼 때면 어떤 환멸감 같은 게 다가왔다.



게다가 그 당시 나는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나름의 자기표현인데,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흥미를 느껴 계발되어 온 것이 연기라고 느껴 이 길을 택한 것이지 직업적으로는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고민에 깊이 빠져 있던 때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만약 내가 직업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있지 않다면 누군가는 날 무시한다고 생각했을 때, 전부는 아닐지라도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가 가진 심성과, 나와 함께 보내온 시간에서 받았던 영향과 느꼈던 감정만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내가 성공(특정 의미로서의)과 자본주의 시대의 경쟁을 경멸하여 모든 걸 집어치우고 자연으로 돌아가 홀로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우리는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말고 관계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각오이자 반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생존권을 얻기 위해 맹렬히 투쟁하고 각박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즘 시대의 삶이라지만, 좋아하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일터에서 격렬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건 익숙한 친구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부딪히는 술잔의 흔들림이 몸으로 전해지는 순간인 것 같아서.



-20170801

작가의 이전글 힐링 말고 스탠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