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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22. 2022

격리

재이의 출산 예정일 D-6


  아내는 목이 아프다며 깼다. 통증은 크게 없었지만 잔기침을 하던 나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걸까. 오미크론의 증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미해서 감기 기운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아내의 증상은 그렇지 않았다. 따뜻한 차와 물을 번갈아 마시며 중간중간 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내를 보니 위험을 느꼈다. 

  일요일에 나가는 수업을 취소하고 자가진단키트를 했다. 아내는 양성, 나는 음성.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양성이라 피해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결과가 하필 이때 찾아왔다. 차라리 빨리 걸려서 출산에 임박해서는 문제가 없길 바라기까지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피하고 싶었던 출산 예정일로부터 일주일. 아내가 양성이 떴으니 나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걸린 뒤 아내에게 옮겨 간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대기자만 육십 명이 넘었고 우리는 두 시간 반을 기다려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둘 다 양성.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재이의 출산을 위해 외부 활동도 최대한 줄이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최소화하며 임신 기간 내내 주의해왔는데 매일같이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 나는 불가항력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것도 내 탓이 아니라면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확진 상태에서 출산 신호가 오면 내원하던 병원으로 갈 수 없다. 119에 전화해 응급차를 타고 보건소와 연락을 해가며 코로나 전담 출산병원의 빈자리를 찾아야 한다. 뉴스에서는 300km를 달려 경남 창원에서 출산을 했다는 소식도 있고, 응급차에서 구급대원들이 화상 연결로 산부인과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분만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성북구로 이사 왔음에도 처음에 아내가 골랐던 강동구에 있는 산부인과를 줄곧 다녔다. 과잉진료도 없고 원장님과 산모 입원실도 마음에 든다며 꼼꼼하게 알아보고 고른 병원이었다. 그래서 진료 때마다 먼 길을 왕복해야 했지만 항상 만족하며 다녔다. 산후조리원도 그 옆에 있는 곳으로 정했다. 백신 접종자는 남편도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접종을 미루던 나는 서둘러 접종을 맞았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신청, 혼인신고, 전셋집 계약, 카페 계약, 소속사 계약이 연달아 이루어지던 날들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그나마 식은 나중으로 미뤄 한 시름 놨지만 정신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내가 출산 전후에 필요한 사항들을 알아봐 주고 나는 그런 과정에 자금이 부족해지지 않게 매일 나가서 돈을 벌었고, 진통이 왔을 때 허둥대지 않게 아내가 보내주는 자료들을 틈틈이 확인하고 차에 출산 가방을 준비해뒀다. 

  하지만 확진으로 인해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는 119와 보건소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는 제발 격리 해제 후에 재이가 나오길 온종일 기도하고 있고, 나는 재이가 나오는 때를 정하는 건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최대한 신속하게 행동하자고 했다. 

  어제는 고열과 인후통에 시달리는 아내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갈아 올려주며 임신과 결혼, 카페 개업과 드라마 촬영, 출산 준비 등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째서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이벤트의 연속인 걸까. 하지만 우리 부부가 잘 지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오히려 잘 됐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이나 실패가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는 일이 우리 철부지 부부의 특징이다. 

  가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뭐 하나 내로라할 능력이 없는 예비 아빠의 소원은 아내가 한 시 빨리 건강을 되찾는 일, 격리가 해제되든 되지 않든 부디 온전하게 병원 안에서 출산하는 일, 삼십구 주라는 긴 시간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준 재이가 건강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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