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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ug 20. 2022

기본값

탄생 후에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사실과 희망 뒤에 언제든 절망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사는 탓에 염세주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덕분에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기준을 잡고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은 나에게 최악이 아니고, 성장하거나 성과를 낸 것이 있다면 그때를 기준으로 잡고 다시 시작하는 것의 반복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다.

 

불운한 일로 꿈꿔 온 것을 못하게 되었다면 생각지도 못한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 여기고,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먹고 자는 일처럼 응당 해야만 하는 일로 여기고 만다. 


그렇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나다 보면 벅찰 때가 있다. 마음은 조급한데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몸은 점점 지쳐갈 때마다 부정의 언어가 터져 나오고 전부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주저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해결책이 없다. 보통은 둘 중 하나다. 계속하거나, 그만두거나. 


그래도 다행은 어렵게 느꼈던 일들도 혼잣말로 욕을 해가며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져 있다. 몇 시간 걸리던 것이 한 시간이면 해결할 수 있게 되고 내 스타일에 맞춘 효과적인 방법을 알게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 처음 걷고, 젓가락을 쥐어 보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어려워했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무슨 일이든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며 시작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기고, 혹시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김칫국을 마셔보기도 한다. 잘난 체를 하는 게 아니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일상에 지친 사람을 잠에서 깨우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희망을 물처럼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안 될 수도 있지만 잘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의 끈을. 지금 하는 일에 소질이 없다면 반드시 소질이 있는 다른 일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더라도 그 책임을 다 하고 나면 선택에 책임을 졌다는 뿌듯함, 사람들이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할 때에도 이대로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작은 용기에 응원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과의 결속 같은 걸로 하루하루를 먹고 산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해본다. 아마도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희망을 품으며 일어나면 아침이 즐겁다. 그리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루를 살고 집에 오면 그제야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산 탓에 굳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성실하고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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