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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ug 28. 2022

재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새벽 다섯 시가 되면 눈이 떠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다소 공허하지만, 어젯밤부터 나가고 싶어 했던 공칠이가 꼬리를 흔들며 밖에 나가자고 재촉하는 울음에 잠이 덜 깬 몸으로 주섬주섬 옷을 추켜 입는다. 


  어느덧 바깥바람은 차가워졌고 이제는 후드라도 하나 걸치고 나와야 하는 아침이 찾아왔구나 하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오늘은 또 뭘 해야 하더라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며 짧게 산책을 하고 들어가려는 찰나 공칠이가 다리에 힘을 주며 공원으로 이끈다. 재이가 태어나고 긴 산책을 통 못하고 있는 공칠이는 재이가 잠들어 있는 아침 산책이 그나마 길게 할 수 있는 산책이라는 걸 아는지 온 힘으로 나를 끌어당기고 그 간절한 몸부림에 터덜터덜 공원 쪽으로 산책 코스를 바꾼다. 공칠이도 고생이지. 재이 때문에 소외된 자기 인생에 투정이 늘어 허구한 날 몸을 비비며 사랑을 갈구하는 개가 되어 버렸다.

 

 재이가 태어나고 나서 가장 힘든 건 우는 재이를 달래는 일도 아니고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는 내 팔자도 아니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다지만 그래도 카페나 공원에 앉아 쉬고 있으면 써야 할 글의 주제도 떠오르고 갑자기 이유 모를 열정이 피어오르곤 했는데 이제는 일분일초를 나눠 쓰지 않으면 오늘 해야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해 불안에 떨며 잠에 들고 자동으로 다섯 시에 눈이 떠진다. 


  그래도 그 시간이면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 나름의 자유가 있다. 언젠간 다시 가겠다고 다짐하며 매일 한 번쯤은 손으로 만져보는 주짓수 도복의 감촉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펼친 사업 관련 도서를 한쪽으로 밀어둔 뒤 소설을 펼치기도 한다. 글감이 떠오르면 랩탑을 열고 글을 쓴다. 되도록이면 성공이나 노력에 관련되지 않은 글을 쓰자고 다짐하지만 현재 내 상황이 온통 극복, 극복을 외치고 있으니 쉽지가 않다. 


  그렇게 몇 줄 채 쓰지 못한 글을 앞에 두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 보면 재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일 시간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내 얼굴을 처음 바라보는 재이는 항상 배시시 웃는다. 아빠를 알아보긴 할까, "재이야" 부르면 가끔은 쳐다보며 웃고 가끔은 관심이 없다. 


  아침 분유를 먹이고 운이 좋으면 배변을 한다. 아침에 배변을 하면 목욕을 한 번에 시킬 수 있어서 좋다. 아침에 아이를 씻기면 퇴근 후에 할 일이 줄어들고 몸이 노곤한 지 출근 전에 다시 잠들기도 하기에 아내를 깨우지 않고 출근할 수 있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면 초조해진다. 카페에 나가서 부족한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아직 대중없는 카페에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올 지, 혹여 만들어 놓은 재료가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하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버려야 하는 재료가 늘어 가늠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 손님이 모두 빠져나가면 부족해진 재료를 다시 채우고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어려서 컴퓨터 공부를 안 한 탓에 서툰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시간이 하염없이 흐른다. 맡길 사람도 없고, 맡긴다 해도 이런 간단한 일에 돈을 지불하기는 아깝다. 멀리 보면 어차피 내가 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이니 이 기회에 공부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서류를 만들지만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이게 도대체 뭐라고 별 것도 아닌 일에 몇 시간을 썼는지 허무가 찾아온다. 


  그럴 땐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열어 본다. 이제는 웃기도 잘 웃고 팔만 잡아주면 서 있기도 하는 재이가 갓 태어난 날들을 돌아본다. 이제 태어난 지 고작 다섯 달이 됐는데 눈도 못 뜨던 꼬물이가 벌써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잡아 흔들고, 불편하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소리를 내며 웃는 걸 보며 인간이란 참 신기한 생명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재이도 다섯 달 만에 이렇게 무럭무럭 성장했는데, 아빠라는 인간이 좀 힘들다고 멈추면 안 되지.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자. 세 번 외치고 다시 돈 벌 궁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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