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에 들었다. 문득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유난히 개운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식탁에 앉아 밀린 영어숙제를 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소소한 일탈이 하고 싶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싹싹 비운 라면 그릇을 설거지하고 넷플릭스에서 <미지의 서울> 첫 화를 봤다. 첫 화 만으로도 '내게 좋은 드라마가 되겠구나' 짐작했다. 양말을 신고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 다섯 시, 습기 찬 서울의 흐린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곤 뛰기 시작했다. 사 킬로미터 즈음 되자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준비운동을 안 한 탓도 있겠지만 너무 오랜만에 뛰니 무릎이 놀랐나 보다. 무리하지 않기 위해 어린이대공원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걸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공원 안에 설치된 기구를 통해 운동을 하고 계셨고, 젊은 사람들은 러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섯 시도되기 전인데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과 역 앞에서 김밥이나 모시떡을 파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특별한 아침이 되는 오늘 이 시간이 그들에겐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분들은 몇 시에 일어나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날까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콜드브루 원액을 물에 섞어 마시며 창밖을 보니 어느새 일곱 시였다.
최은영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을 펼쳐 읽었다. 중간 부분까지 읽다 멈췄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사랑을 하면서 이경은 많은 일들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았다.'는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한 사람의 단단한 사랑을 받음으로써 타인의 시선과 개인의 판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진실 같았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 앞에서 무적이 되기도 하고 무력해지기도 한다.
여덟 시, 이제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는 매장 메뉴들의 레시피를 정리하고 영어 수업을 듣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떠오른다. 물론 다 해내지 못하고 오후 즈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귀찮아질 수도 있다.
갑자기 솟아나는 열정은 식기 쉬워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매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날 자신은 없으니까. 그래도 꽤나 길고 보람찬 아침을 보냈다고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부턴가 다짐이란 모든 걸 변화시키는 깨달음이 아니라, '이런 하루를 살아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의 기쁨이 된 것 같다. 이런 다짐이라도 가끔씩 느껴볼 수 있다면 적어도 살아갈 이유 하나는 더해진 거니 다짐만 자주 할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