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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n 06. 2020

작은 빛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빛

사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반려견 공칠이와 함께 사는 덕에 항상 옥상이 있는 옥탑방을 골라 살게 되는데(마당이 딸린 주택에 살 형편이 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올해 새로 구한 집은 운이 좋게도 저렴한 월세에 투룸에다 옥상이 매우 넓어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살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깔끔한 형태는 아니지만 공간을 분리해서 생활하고 싶었던 나의 조건을 만족시켜 주는 새 집의 방 하나는 침실로, 방 하나는 작업실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데, 정이 들면 돈을 들여서라도 약간의 리모델링을 해서 오래 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사실 집 자체가 좋은 편은 아닌데도 이 집이 마음에 드는 건, 상가건물이라 한 층 자체의 면적이 넓어 내가 살고 있는 5층의 방 두 개를 제외하면 모두 옥상이라는 점이다.


웬만한 애견카페의 놀이터만 한 우리 집의 옥상은 덩치 큰 공칠이가 뛰어놀기에도 넉넉하고, 사람들을 열 명 남짓 초대했을 때도 옥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크기다.


그런 옥상을 갖게 됐으니 적당히 분위기를 낼 정도로만 꾸며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이 넓은 옥상을 꾸미는 데도 엄청난 돈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새 집의 옥상은 아직 방수페인트로 덮인 ‘초록색 옥상’에 불과하지만 심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여유가 생기면 멋지게 꾸미겠다는 욕심은 버리지 않고 있다.


옥탑방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평상을 놔라, 천막을 쳐라, 잔디를 깔아라, 빔프로젝트를 설치해라 등등 각자가 상상한 옥탑의 모양새로 꾸미길 권하기도 하는데, 사실 살아본 사람들은 옥상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옥상을 거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칠이의 건강을 위해 매일 같이 옥상 바닥을 청소해야 하기에 옥상에 어설프게 손을 대는 것이 두렵기도 한 상황이다.


어찌 됐든 여러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이 옥탑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두 가지인데, 쉬는 날 아침 일찍 빨래를 널어놓고 옥상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다가 오후면 바삭하게 말라 햇빛 냄새가 스며든 빨래를 걷는 것과, 바쁜 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캔맥주를 하나 들고 옥상에 나가 검은 하늘 위로 우뚝 솟아오른 잠실 롯데타워 옆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중 밤에 달을 바라보는 일을 이야기하자면, 주변이 주택가라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잘 보이는 우리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달은 항상 가까워 보이고 낮게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걱정이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 참 좋다.


한 건축가가 예능 프로에서 원시시대 부족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쬐던 모닥불이 현대에는 세 군데로 분리되었는데 하나는 가스레인지, 하나는 보일러, 하나는 텔레비전이라고 말했다.


그중 유일하게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닌 텔레비전은 인간이 흔들리는 불빛을 보며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성질 때문에 발달되어 왔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적어도 몇십 분은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게 놔둘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 맥락에서인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어두운 시간에도 행복을 느끼고 있는 순간들을 자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침대에 앉아 향초를 켜놓고 책을 읽는 일, 음악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며 바보같이 춤을 추는 일, 우울한 감상에 빠져있는 내 옆에 공을 물고 와 놀아달라는 반려견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 소소하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름대로 분위기를 내는 일, 별 내용도 없는 오늘의 일기를 쓰고 지난날의 일기를 다시 읽어가며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스스로를 토닥거리는 일.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며 즐거워하고 있음에 만족하는 일.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조금의 빛을 바라보는 일, 행복을 바라보는 일.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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