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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l 26. 2020

낭비

어렸을 적 엄마가 계곡에 가서 고기나 구워 먹고 오자고 하면 아빠는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걸 왜 귀찮게 거기까지 다녀오냐고 했다. 나는 고기는 어디서 먹어도 상관 없ᆻ지만 계곡에 가고 싶었다. 투덜대며 피곤한 몸을 일으키던 아빠는 차에 시동ᅳᆯ 걸었고 고기를 먹진 못했지만 가족이 함께 ᆫ을 잡고 걸었던  그날을 기억한다. 사람들과 벽을 치고 사는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기 인생 챙기기가 바쁘다. 효율 같은 것을 따지지 ᅡᆭ으면 남들보다 늦어질까봐 다리를 동동 구른다. 나는 일할 때는 효율을 찾다가도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때면 낭비하는 시간을 사랑하ᄀ 한다. 집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재개봉한 극장까지 찾아가서 내가 처음 이 영화를  것도 이 극장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강원도에 가는 세시간 동안 이야깃거리가 떨어져서 조ᄀ 눈을 붙이라고 말하는 나와, 혹시나 내가 졸까봐 어ᅵ로 아무 말이나 던지는 그녀 사이의 침묵ᄋ 좋아한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영화관이나 전시회는 사라져도 좋다. 하지만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과 영화관까지 가기 위해 걸어야 하는 골목에 있는 오래된 서점이나 커다란 주택에 자라난 느티나무 같은 것을 기억하며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바쁜 하루에 밥만 같이 먹고 헤어질 수 있는 동네 친구를 찾다가 결국엔 커피에 소주까지 마셔놓고 친구의 등을 툭툭 치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히죽거리며 잠에 드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여행지에서 좋다는 곳은 다 가보려고 빡빡하게 짜놓은 스케쥴이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딘지 모를 골목에서 길을 잃고는 둘이 마주보고 한참동안 웃음을 터뜨리는 게 내가 여행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바다를 보는 시간보다 바다를 오가는 시간이 더 많을지라도 여정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나의 사랑이다. 낭비를 아깝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이 사랑스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게 낭만이다. 어디서나 보이는 달을 보러 가자고 바다로 가는 것이 우리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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