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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Jun 05. 2020

WHY

이유를 낱낱이 밝히기엔 너무 어려운 문제들

누구는 소설을 쓰고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연기를 하고 누구는 그림을 그린다.


어떤 건 직접적이고 어떤 건 간접적이고 어떤 건 구체적이고 어떤 건 추상적이다.


그중엔 낱낱이 이유를 밝힐 필요가 없거나 이유가 없는 것들도 있고, 이유가 없으면 납득이 되지 않아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들도 있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인터뷰에서 피아노를 칠 때 몸의 어떤 근육을 어떤 식으로 쓰냐는 질문에, 차라리 지네에게 다리의 근육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아티스트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분석가들이나 평론가들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밝혀내려고 고군분투한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유 같은 걸 자신에게 묻지 말라고 했다지만, 나는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다.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은 왜 이러는지, 나중엔 왜 그럴 건지, 왜 사는지부터 좀 전엔 어떻게 한 건지, 미천한 머리와 몸뚱이가 다시 기억을 못 하니 원인과 이유를 찾아내 자주 시도하고 반복해야 그나마 좋은 것들이 몸에 익는다. 


내가 하는 것에서라도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건, 우리는 글쓴이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본이라는 악보 위에 올라가 음표가 되어 부지런히 오선지를 뛰어다니지 않고서는 연주가 되지 않는데, 이때 장조인지 단조인지, 음이나 피치는 맞추면서 하는지, 박자와 리듬 같은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자유롭게 뛰어놀며 감정을 표출할 수가 없다. 악보에서 이탈해버리는 꼴이 된다.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도 한다. 감각이 좋은 사람들은 새로운 발견을 통해 또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나가기도 하지만, 나같이 더딘 수련형 학도는 그때 그때의 이유와 감각을 재생시키는 기술과 근육을 잘 발달시켜놓아야 조금이나마 그들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 


내가 너무 거창하게 이유를 찾는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유를 찾으라고 백문백답 같은 걸 던져준다. 이유를 찾다 보면 삶이 더 소중해진다고 믿기도 하고, 특히나 타인이 자주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너무 자주 타인이 되다가 가끔 자신을 잊거나 잃기도 하는데, 훌륭한 고전 예술가들이 자신의 건강과 삶을 버리면서 엄청난 작품을 남겼다지만, 그러지 않고서도 훌륭한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유를 찾다 보면 삶이 더 소중해진다고 말한 건, 그냥이라고 말하는 것 중에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 좋을 확률이 높지만, 싫은 것들을 계속 그냥 싫어했다가는 후회를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찮더라도 본인이 무엇을 왜 싫어하는지, 미래를 위해서라도 끔찍한 과거를 꺼내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치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이유가 없어서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도 있다. 인생 자체가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한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갈 이유 하나만큼은 있어야 내일도 힘을 내지 않을까.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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