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Jun 04. 2020

벌꿀오소리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 1위

벌꿀오소리가 롤모델이라는 나의 허무맹랑한 소리는 벌꿀오소리가 세계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 1위에 있기 때문이다.


피부와 지방층이 두꺼워 물려도 타격을 별로 받지 않는다는 벌꿀오소리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하이에나나 사자와의 다툼에서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데, 큰 동물의 급소를 물어뜯는데 능해서 큰 동물들도 어려워한다고 한다.


나는 어렸을 적 가족 중에서도, 학교에서도 체구가 작은 데다 성격이 소심해서, 유치원 때는 수업 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해서 교실에다 실례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로 자라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고, 그 친구들은 어디에서나 당당했는데, 그때 난 그 친구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의 성격은 완전히 변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친구들을 이끌고 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불만이 있으면 반박했다. 싫으면 안 하고, 좋으면 더 했다. 주장하는 바에 근거만 있다면, 목소리를 냈을 때 효과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따박따박 말대꾸를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이 야자는 필수라고 했을 때,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을 가져놓고 ‘강제학습’을 시키는 게 이상하니 교육청에 전화해보겠다고 했다가 벌을 서거나, 대학생 시절 습관적으로 휴강을 하는 교수님께 명 당 수업료를 환산해서 액수를 알려드린 다음 보강을 똑바로 하시던가, 돈으로 돌려달라고 했다가 혼나기도 했다.


결국 나는 야자를 빼고 그 시간에 연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교수님은 종강 전까지 보강을 채우셨다.


연기를 하면서 무시당할 때가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오디션이다. 직책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카메라 한 대를 켜놓곤 내 프로필을 보더니 “알만한 작품이 하나도 없네”라고 말하길래, “제가 지금 오디션 보러 온 이 독립영화는 알만한 작품인가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사과는 못할망정 “영남 씨,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가는 이 바닥에서 연기 못 해.”라고 하길래, “부탁이니까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 이창동, 김지운 감독님께 지금 당장 전화해서 차영남이랑은 절대 작업하지 마시라고 전해줘라. 그분들이 내 이름 석자라도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전화해달라 지금, 왜 안 하냐. 전화번호 모르냐. 그 덕에 나는 연기 좀 더 오래 할 수 있겠다. 나 이 작품 안 해도 된다. 수고하셔라.” 하고 나온 적이 있다.


존중이 없는 사람이 나를 캐스팅한다고 해도 그 현장에서 나는 절대 즐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버스에서 벨을 눌렀는데 문을 안 열어주는 기사님께 말을 못 하는 사람을 보고, 큰소리로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대신 말하고,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에 타는 사람들에게 “내리고 타세요”라고 말했을 때, 생각보다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물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기엔 복잡한 상황도 많아서 나도 때로는 모른 척 지나갈 때가 많다.


누가 확실하게 잘못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잘 안 가는 상황들은 함부로 끼어들거나 돕기가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윗사람이라고 해서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마음대로 하게 두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례하게 구는 사람들에게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불편한 건 불편한 게 맞고,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최선이겠으며, 무언가가 잘못된 게 있으면 사과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목소리를 낸다. 당신 편하자고 함부로 하지 마시라고. 아주 조금씩이지만 언젠가 세상이 변할 수 있게.


-20190426

작가의 이전글 나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