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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03. 2020

프리랜서 배우의 삶

일을 못 구하면 부지런하기라도 해야지

프리랜서가 되면 부지런해질 줄 알았던 나는 생각보다 무기력했다.


더 이상의 휴식은 사치임을 알면서도, 다시 혼자가 되어 일을 구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고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고장 난 프린터를 몇 달째 고치지 않은 탓에 인쇄소에서 몇십 부의 프로필을 출력해 몇만 원을 내면서 출력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가 프로필과 시나리오를 출력할 일이 잦았다면 아마 일찌감치 고쳤겠지.


오디션을 보고 나와서 근처 영화사를 찾아가 프로필을 제출하면서도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과연 한 번이라도 보긴 할까, 투명홀더에서 벗어난 내 이력서 두 장이 이면지로 쓰이면서라도 그들의 눈에 한 번은 들어올 기회가 있을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여의도를 걸으며 바라본 방송국의 벽면에는 내 친구가 나오는 드라마 포스터가 걸려 있어 반갑고 부러웠다.


혼자 일하던 때에 연락드렸던 캐스팅 디렉터 분들의 목록을 꺼냈다. 먼지가 쌓인 파일은 3년이 지난 자료였고, 3년 만에 불쑥 전화를 드릴 용기가 나지 않아 메일로 프로필을 발송했고, 꽤 많은 메일이 반송되었다.


아마 내가 가진 정보가 낙후돼서겠지만, 그들에게 프로필을 보낸 이 중 많은 이들이 지금은 연기를 하지 않듯이 그들도 이제는 캐스팅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에이전시를 돌며 영상 프로필을 남겼다. 오늘을 위해 4.5 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옛날보다 사뭇 진지해졌지만 나에게서 밝은 모습을 기대한다는 몇몇 관계자들의 조언에 따라 유쾌한 연기를 열 번도 넘게 한 하루였다.


몇몇 곳에서는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알아봐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예전과 다른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과거에 함께 했던 광고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길을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어 건물로 들어가니 에이전시가 있었다. 투어 리스트에 없었지만 내 몸이 사무실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잊지 말라고 항의라도 하듯이 매달 에이전시를 방문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캐스팅 디렉터에게 연락이 와 현장에 나가는 상상을 했다. 정장 다섯 벌을 챙겨 새벽 다섯 시 반까지 파주 어디론가 오라는 상상을 했다. 여기저기서 옷을 빌린 뒤, 전 날 일산의 누군가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새벽 일찍 일어나 부기를 빼려 한 시간 뛰고 나서 촬영장으로 가는 상상을 했다. 결국 내가 가져온 의상 대신 의상팀이 준 의상을 입고는 긴장하며 준비한 몇 마디의 대사를 뱉어낸 후, 촬영이 시작한 지 30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나를 상상했다. 그 버스 안에서 캐스팅 디렉터에게 전화해 문제없이 잘 마쳤다며 일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는 상상을 했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현장에 가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설레던 날들이 지나고, 더 큰 롤에 대한 욕심과 이동거리나 준비물에 대한 피곤함이 먼저 생각날 때면 오만한 나를 자책했다.


그렇게 촬영한 날로부터 몇 주 후 방송된 화면에서 몇 마디였던 내 대사는 한 마디가 되었고, 주변에 알리지 않길 잘했다고 안심을 하며 TV를 껐던 기억이 났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보다 내가 잘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역할에 욕심을 부리는 머리 큰 신인이 되어 부리는 나의 패기가 싫지는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주인공을 꿈꿔볼 수 있으니까, 내 인생 안에서의 주인공 말고, 내가 꿈꾸는 세상에서의 주인공.


다들 겸손하게 감초 조연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며 웃을 때에도 나는 정색을 하며 주인공이 될 거라고 말했다. 우리가 지금 몇 년째 조단역을 전전한다고 해서, 특출 난 외모를 가지지 못했다고 주인공이 못 될 이유는 없다고, 연기를 잘하고 매력만 있다면 언젠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혼자 얼굴을 붉히며 외치던 날들이 많았다.


소속감이 사라지는 것은 일이 있고 없고를 떠나 외로워지는 일이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서른둘의 프리랜서 신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애써 몸을 일으켜 바삐 움직이고 나니 한결 머리가 시원하다.


이렇게 매일을 살았던 이십 대의 나날들을 떠올리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어찌 그리도 열정적이었나, 게으른 지금의 나와 비교하니 그때의 내가 한없이 기특했다.


몇 년 뒤에도 칭찬해줄 수 있는 나날들로 기억되는 현재의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다. 빛날 날을 꿈꾸며.


2019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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