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모운 Mar 14. 2020

엄마와 딸

비행기에서 눈물을 흘리던 날

갑자기 생긴 일정 때문에 미루어 뒤늦게 떠나는 비행기에서, 나는 몇 번이고 울음을 참았다.


비엔나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60대로 보이는 어른들이 단체로 관광을 가는 듯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난 그 가운데 덩그러니 혼자 앉게 되었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좌석에 설치된 tv를 켜실 줄 몰라 화면을 계속 누르고 계셨고, 나는 리모컨을 꺼내 화면을 켜드리고 한국어로 변경해드린 뒤 보고 싶어 하시는 영화를 틀어드렸다.


이어 내 나이를 물으셨고 내가 답하자 작은 딸과 나이가 비슷하다며, 딸이 무슨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시는데 꽤나 엘리트 코스였다.


딸이 유럽여행을 보내준다면서 자랑을 한참 하시다가 여행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친구와 함께 유럽 4개국을 거치는 7박 9일 여행을 한다는 아주머니께 좋으시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셨다.


원래는 이맘쯤에 딸과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딸의 결혼 계획이 잡히면서 갑자기 바빠져 무산되었다고 했다.


여태까지는 박사과정을 밟는다고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이제는 공부를 하다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해서 결혼 준비로 바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더 바빠질 딸을 생각하니 앞으로 남은 생에 딸과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제주도라도 2박 3일 다녀오자고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고 해서 결국 친구와 함께 유럽에 가게 된 아주머니는, 딸이 보내주는 여행인데도 마음이 영 편하지만은 않다고 하셨다.


딸이 태어난 뒤로 평생을 함께 살았는데,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때가 오겠지 생각하다가 이제는 그때가 다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고 하셨다. 아마 앞으로 딸에게 시간이 생긴다 하더라도 딸이나 사위 눈치를 보면서 여행 얘기를 꺼낼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본인도 점점 나이가 먹어 이렇게 긴 비행은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시며 무릎 위를 툭툭 치시는 모습에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면 여행도 자주 가고, 차도 집도 해드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아들 자랑으로 어깨가 높아지는 엄마를 상상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곳 한 번 함께 떠나지 못하고 명절 때나 돼서야 이틀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러다 정작 하는 일이 잘 되고 바빠지면 지금보다 더 엄마를 찾아갈 수 없겠지 생각하며, 손에 카드를 쥐어드리고 편하게 쓰시라는 말로 불효를 대신하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니 아찔했다.


나이가 들수록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지고, 아는 것이 적어지면 만나도 할 이야기가 줄어든다.


남은 인생 안에 딸과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은 어머니의 삶은 어떨까.

자랑스러운 딸이지만 보고 싶을 때 보러 오라거나 보러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엄마의 삶은 어떨까.

그런 것을 어림짐작으로라도 알면서, 본인의 삶 때문에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자식의 삶은 어떨까.


나는 어떨까. 엄마는 어떨까.


2019년 비행기에서

작가의 이전글 최고가 못 된다고 최선까지 안 하진 말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