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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15. 2020

돌바닥

여행의 촉감

나는 여행지에서 많이 걷는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지에서는 일찍 눈이 떠져서 주섬주섬 트레이닝복을 입고는 밖으로 나가 걷는다.


아침 일찍 연 카페가 있다면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구경한다.

어제는 많은 인파를 뚫고 가서 봤던 유명한 관광지가 오늘 아침엔 한산하다. 나 혼자 서서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어제는 대단해 보였는데 오늘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제서야 나는 이게 왜 유명해졌을까 생각해본다.


프라하는 넓지 않은 지역이라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얼추 주요 관광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낮과 밤으로 북적이던 관광지를 한산한 아침에 바라보니, 이 건물이 유명한지 옆 건물이 유명한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물이더라는 정보를 찾은 후에야 알 수 있던 유명세는, 사실 내가 알지 못하면 특별한 건물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짧은 일정 내에 알찬 여행을 보내기 위해서 유명하다는 맛집과 아름답다는 관광지를 열심히 찾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었다.


타인이 여행한 기록들에 의존해 누군가가 갔던 곳에 가고 어디선가 맛있게 먹었다던 음식을 먹으며 내 여행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의 음식은 아주 맛있었고, 걷다 지쳐 들어가 잠시 쉬었던 카페는 커피도 맛있고 피아니스트의 연주도 훌륭했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레스토랑은 서비스부터 맛까지 그저 그랬으며, 아인슈타인과 프란츠 카프카가 자주 갔다던 카페는 너무 시끄러웠다.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곳에는 한국 사람이 많았다.

대화하는 사람들은 각자 유명한 곳을 거론하며 거길 안 가봤냐고 자신의 빽빽한 여행 루트를 자랑했다.

부러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멀미가 나 그곳에서 도망쳤다.

나도 분명히 맛집을 찾아보고, 찾아가고, 유명 관광지에 가서 풍경을 바라봤지만, 제대로 즐긴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걷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벽과 골목이 예뻤고, 그 골목 사이로 보이는 하늘 가운데에 떠있는 구름이 귀여워서 오래 앉아있었다.

카를교는 분명 아름다웠지만 카를교라고 착각해서 지나간 다리 또한 아름다웠다.


사실 내가 프라하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맛있는 맥주도 아니고, 프라하성에서 한눈에 보이는 프라하의 경치도 아니고, 울퉁불퉁한 돌길의 압박이 남은 내 발바닥이다. 인도에는 작은 돌길이 놓여 있어 군데군데 자극을 주고, 차도에는 큰 돌들이 놓여 있어 잘못 디디면 발목이 꺾이는 돌길을 걸으며 고생한 내 발바닥이 가장 큰 기억이다. 그 길이 주던 감촉을 느끼며, 여행책자에 나와있지 않은 길을 많이도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너무나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아까워해서 이리도 불행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완벽을 향한 집착 때문에, 맛없는 음식을 먹고 멋없는 곳에 가도 그것 또한 우리의 소중한 경험임을 망각하고, 남들이 남긴 길을 좇아 계속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내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얻으려 이곳에 왔을까 생각했다.


실패가 연속되면 행복하지 않을 순 있겠다. 하지만 안전한 길이 연속되어도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다. 재미있는 순간의 연속을 행복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나는 돌길의 울퉁한 감촉을 그리워하며 비가 그친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2019년 프라하 여행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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